[기고/조남현]헌법가치와 충돌하는 사학법 개정안

  • 입력 2005년 7월 1일 0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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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간 의견 차이로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가 9월 국회로 넘겨졌다. 하지만 9월 국회에서도 여야가 이견을 좁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간 대립이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가치관이 다른 데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가치의 충돌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9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더라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등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개정안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헌법가치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이른바 개방형이사제 도입과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심의기구화를 핵심으로 한다. 개방형이사제는 교사회 학생회 등 학교 구성원들이 이사 3분의 1을 추천하도록 하고 있는데, 피고용인이 고용인을 사실상 임명(추천을 법으로 강제하므로)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 곧 헌법가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노조가 경영진 일부를 임명하도록 하는 것과 똑같다. 학운위의 심의기구화란 현행 자문기구인 학운위를 심의기구로 만들고, 학운위의 결정을 이사회가 받아들이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재단으로부터 사학경영권을 박탈 내지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니 노조가 기업 경영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역시 우리의 헌법가치와 충돌한다.

개정안은 사실상 사학 경영을 집단운영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굳이 시행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평준화 지역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리는 신흥 명문고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사립학교다. 무엇이 사립과 공립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그건 책임운영의 주체, 곧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사학재단은 ‘내 학교’를 명문으로 키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사립과 공립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책임 운영의 주체를 없애버리는 집단운영체제로 가면 필시 사학의 퇴보를 부를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은 일부 사학의 비리를 들어 전체 사학을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해 경영권을 학교 구성원들에게 분산시킴으로써 비리를 없애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비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비리의 주체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비리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비리 잡자고 책임운영의 주체를 없앰으로써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돌려줌으로써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는 사학은 시장의 외면에 의해 망하도록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자면 이른바 ‘3불(不)’ 원칙이니 하는 억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사학법 문제만 따로 떼어놓지 말고 우리 교육을 근간에서부터 재검토해 교육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안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해지고 합의에 의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논의의 초점을 ‘교육’에 맞춰야 할 때다.

조남현 교육공동체시민연합 정책기획위원 겸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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