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국 로열발레단 ‘신데렐라’ 내한공연

  • 입력 2005년 7월 1일 03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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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로열발레단의 ‘신데렐라’ 중 마지막 3막 결혼식 장면.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영국 로열발레단의 ‘신데렐라’ 중 마지막 3막 결혼식 장면.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심술궂은 의붓어미와 언니들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착하기만 한 어린 딸, 그러다 어느 날 그녀의 고운 마음씨를 어여삐 여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왕자의 사랑을 얻는다는 신데렐라의 얘기는 유럽에만도 500가지 이상의 버전이 있다던가.

9세기 중국 기원설의 이 민담은 우리나라에도 조선 시대에 ‘콩쥐팥쥐 전’을 낳았다. 그러나 오늘 밤 여러분들이 구경하시는 것은 여기 사진에 보는 두 사람의 작품입니다, 하고 동화책 표지화처럼 아름다운 파스텔 컬러의 베일 그림 위에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 안무가 프레더릭 애슈턴의 사진이 비친다. 그 사진이 사라지고 이내 표지화처럼 아름다운 그림도 희미해지더니 그대로 장장 2시간여에 걸친 발레의 무대 속으로 관객의 눈을 인도한다.(브라보!)

1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온 영국 로열발레단의 첫 무대 ‘신데렐라’는 여러모로 오래 기억될 만한 공연이었다. 로열발레의 레퍼토리 가운데 30여 편이 애슈턴의 안무 작품. 로열 발레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애슈턴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04∼2005년 시즌에 서울에서 보는 ‘신데렐라’는 이 발레단의 네 번째 제작진에 의해서 꾸며진 것이다. 나는 우선 그 무대장치와 의상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신데렐라’의 더할 나위 없는 황금 대상감은 단연 첫날의 타이틀 롤을 춘 다시 버셀! 발레리나로서 완전한 몸매를 가꾼 그녀의 지체는 음악보다 부드러운 움직임이, 음악에 따라 춤을 춘다기보다 음악이 그녀의 춤을 쫓아오는 것만 같다. 물결이, 또는 바람결이 육화(肉化)되어 가시화된 듯한 버셀 춤의 고귀한 우아함은 나에겐 마고 폰테인 이래 처음 맛보는 감동이었다.

발레의 재미를 위해 여장(女裝) 남성무용수가 추는 심술궂은 언니들의 춤은 뛰어난 연극(팬터마임)적 기량을 요하며 한동안은 애슈턴 자신이 맡아 추기도 했던 볼거리. 그 밖에도 2막부터 등장하는 어릿광대(호세 마틴)의 발레 솜씨도 눈 여겨 볼 만했다.

삐드드득 쾅!

발레가 진행되는 동화세계가 갑자기 세트 교체의 실수로 지진이 일어난 듯 무대장치가 뒤틀리고 진행이 중단되었다. 예술의 완벽과 기술의 결손이 빚어낸 파열음? 동화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간극이 시위하는 균열음?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될 사고였으나 곧 재개된 환상적인 발레 무대가 관객들의 너그러움을 얻어 공연이 끝나자 거듭된 커튼콜의 갈채를 받았다.

최정호 객원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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