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50代에 일터에서 밀려나느니…“임금피크制 어때요”

  • 입력 2005년 7월 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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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생활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터에서 ‘잠바’를 입었습니다. 아직 보름밖에 안돼 조금 낯설지만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지난달 29일 인천 서구 당하동의 갈륨비소반도체 전문 업체인 ‘네오세미테크’ 공장에서 만난 한국수출입은행 홍경석(洪炅錫·56) 부장. 그가 내미는 명함에는 은행 부장 직함 대신 ‘네오세미테크 상임 고문’이라고 찍혀 있었다.

홍 부장은 올해 1월 수출입은행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뒤 이 제도의 첫 번째 적용 대상자. 2008년 8월 퇴직할 때까지 이 은행의 거래업체인 네오세미테크로 출근해 장기 컨설팅을 하면서 월급은 은행 쪽에서 받는다.

올해 그의 연봉은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인 지난해의 90%로 줄었고 내년에는 75%, 다시 이듬해에는 60%로 감소했다가 퇴직하는 해인 2008년에는 30%로 낮아진다.

홍 부장은 “봉급은 줄었지만 오랜 경험을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의 미래에 투자하게 됐고 퇴직 후를 대비할 기회도 얻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처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감정원 등이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올해에는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한국산업은행 문화방송 등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현대자동차 조일제지 등 일부 제조업체와 한국지역난방공사, 농업기반공사도 직원의 연령 증가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 중에는 절감된 인건비로 신입사원을 더 뽑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어 고령자 문제 및 청년실업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2003년 제조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이 제도를 받아들인 대한전선은 회사의 위기를 느낀 노조가 먼저 회사 측에 도입을 제안했다. 지금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이 제도 도입을 기업들에 권고하고 있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고(高)임금-저(低)성장-고령화 시대’에 기업의 부담과 근로자의 조기 퇴직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임금피크제를 꼽는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金廷翰) 연구위원은 “50대 초중반에 은퇴해 노후생활이 불안해지는 것보다는 월급이 깎이더라도 정년, 또는 그 이후까지 일하길 원하는 근로자가 많아지고 있어 임금피크제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근로자의 임금삭감을 불러온다며 반발하고 있어 노사관계의 새로운 마찰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임금피크제:

일정한 나이를 정점으로 퇴직할 때까지 근로자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는 제도. 대신 회사는 정년을 보장하거나 때로 늘려주기도 한다. 근로자는 고용이 안정되고 회사는 임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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