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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향한 흙의 소리없는 외침…테라코타 작가 한애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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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향한 흙의 소리없는 외침…테라코타 작가 한애규씨

입력 2005-05-31 03:17수정 2009-10-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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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로는 드물게 테라코타를 하는 한애규 씨. 회오리 속에서도 무덤덤한 표정의 여인상을 빚은 작품 앞에 섰다. 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테라코타 작업을 주로 하는 한애규(52) 씨는 국내 미술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존재다.

테라코타(Terra-Cota)는 ‘구운 흙’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유약을 바르지 않고 흙째 가마에서 구워내는 작업이다. 불 물 햇빛 습기 같은 ‘운명적 요소’들과 싸우는 번거롭고 더딘 일이어서 장인(匠人)에 버금가는 기술이 중요하다. 보통 1180도 고온에 사흘 정도 굽는데 가스 불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면 색이 다르게 나오거나 표면이 쩍쩍 갈라져 버린다.

아무래도 여자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여성작가로는 드물게 흙 작업을 하는 한 씨의 작품은 기술적 완성도에서도 화단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그녀의 집 지하에 마련된 40여 평 작업실은 무슨 건설현장 같았다.


흙더미와 각종 공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업실 한쪽에는 흙으로 빚은 그녀의 분신들이 불구덩이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흙 묻은 운동화에 거친 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질끈 동여맨 머리로 1층에서 지하로 매일 출퇴근한다는 그녀는 “신문기자 하고 싶어 하는 딸에게 ‘예술가가 되라’고 권했던 어머니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안 시켰을 것’이라고 혀를 끌끌 찰 정도”라고 전하며 웃었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는 온화한 갈색 살결의 둥그런 뺨과 두툼한 입술을 지닌 풍만한 체구의 중년 여인상.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얼굴처럼 둥글둥글하고 튼실한 실제 크기의 중년 여인상들을 통해 가사와 육아, 차별적인 사회구조에 묶인 여성의 억압과 해방,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근원인 모성적 에너지를 표현해 왔다.

초기에는 조각상 여인들의 표정에 분노 체념 번민 절망이 많았지만, 갈수록 그 표정은 기쁨 기대 희망, 나아가 보살처럼 넉넉하고 덤덤한 것들로 바뀌어왔다.

그런데 6월 1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3층에서 개막할 개인전 ‘침묵’은 이게 과연 그녀의 작품들인가 싶게 확 변했다. 여인상은 간데없고 인물과 동물의 형상을 단순화해 커다란 돌덩어리처럼 표현한 30여 점이 선보인다.

전시장은 마치 오래된 거석더미나 폐허가 된 유적지 같다. 관람객들은 그 옛날 고도를 오가는 듯 작품 사이를 오가며 작품에 기대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부드러운 작품에 몸을 뉘이고, 침묵 속에 휴식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지난 몇 년 간, 유럽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무너진 기둥들, 누군가 무수히 다녔을 골목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던 모퉁이들을 만나면서 한때는 찬란한 때도 있었을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만들었던 역사를 생각했습니다. 시간과 함께 축적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되 침묵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생각을 이번 작업에 담아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목적의식적으로) 여자라는 주제를 다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 이야기를 해온 것뿐”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세계가 이제 여자를 넘어 인간, 삶의 근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꿈’을 소재로 한 부조작품인 ‘꿈 연작’ 30여 점도 나온다. 전시는 13일까지. 02-736-1020.

고양=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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