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이제 싫어… 아시아 금융질서 우리끼리 지킨다”

  • 입력 2005년 5월 30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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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1997년 외환위기의 아픔을 딛고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질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27일 한중일 3국의 중앙은행이 맺은 통화스와프 확대 계약은 이런 노력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들의 무기는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엄청난 외환보유액이다.

○ 미국과 IMF의 ‘굴레’

IMF의 설립 목적은 가맹국이 공동으로 마련한 기금을 재원으로 각국의 외화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고 세계 각국의 경제 번영을 꾀하는 것.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도 1997년 외환위기 때 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다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살인적인 고금리에 냉혹한 구조조정, 즉각적이고도 광범위한 정책 변경….

마틴 펠드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는 “IMF에 도움을 요청한 나라는 고객 또는 환자일 뿐이지 죄수는 아니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IMF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IMF 내 쿼터(지분·투표권을 가르는 기준이 됨)가 17.4%에 불과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 자격으로 IMF 설립을 주도한 덕에 쿼터와는 관계없이 이 기구를 통해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미국과 IMF가 주도하는 국제금융질서에 편입돼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이제 점차 제몫 찾기에 나선 것이다.

2000년 5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한중일 세 나라(아세안+3)가 합의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그 시초다.

○ 금융위기 우리 힘으로 막는다

CMI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때 ‘아세안+3’가 합의한 역내(域內) 자금지원 제도.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양자 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다. 어느 한 나라가 금융위기에 빠지면 상대국이 달러화 등 외화를 즉각 융통해 준다는 것.

4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아세안+3’는 CMI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통화스와프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IMF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규모를 스와프 액수의 10%에서 20%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중국 런민(人民)은행과 27일 20억 달러 규모의 기존 계약을 갱신해 40억 달러로 증액했다. 일본은행과도 기존 2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과 별도로 30억 달러의 원-엔 통화스와프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이는 IMF의 승인 없이 100% 지원이 가능하다.

이로써 한국은행은 아시아 6개국과 총 13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했으며 다른 아세안 국가와도 통화스와프 규모를 늘려 나갈 방침이다.


○ 아시아의 ‘경제독립’ 선언인가

통화스와프 계약 외에도 아시아 국가들이 IMF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아시아태평양지역 11개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을 십시일반 출자해 만든 2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채권펀드 2호(ABF2)가 그중 하나. 최근 본격적인 투자에 들어간 ABF2는 아태지역의 달러화 표시 채권에 투자했던 ABF1과는 달리 원화나 위안화 등 역내통화 표시 채권에 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27일 한국과 일본의 중앙은행이 맺은 원-엔 통화스와프 계약도 달러화가 아닌 원-엔 간 교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 일본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엔화로 결제할 때 원화를 달러로 바꾸고 다시 달러를 엔으로 바꾸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원-엔 시장이 개설되면 수수료를 줄일 수 있어 엔화 결제비중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는 “이번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은 아시아 역내 통화표시의 자본 흐름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아시아 국가들의 이런 노력은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위한 모색 단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화스와프: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자국의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상대국에서 단기자금을 지원받는 수단이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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