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입력 2005년 5월 28일 0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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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의 저자인 프랭크 퓨레디 영국 켄트대 교수는 도서관과 공연장을 비롯한 문화적 공공재들이 대중의 문화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그들의 취향에 순응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사진은 뉴욕 공립도서관 대열람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의 저자인 프랭크 퓨레디 영국 켄트대 교수는 도서관과 공연장을 비롯한 문화적 공공재들이 대중의 문화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그들의 취향에 순응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사진은 뉴욕 공립도서관 대열람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프랭크 퓨레디 지음·정병선 옮김/255쪽·1만2000원·청어람미디어

1970년에서 1995년 사이 미국 대학이 배출한 역사학 전공자는 39%, 외국어 전공자는 37%가 줄었다. 2000년 미국 대선 토론에서 공화 민주 양당 대통령 후보가 사용한 어휘는 각각 평균 6, 7학년(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수준이었다. 영국 ‘문화 미디어 스포츠부’ 보고서는 ‘도서관은 도서 대여 기능을 축소하고 케이블 TV 시청이나 커피 제공 등 서비스 기능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현상들은 과연 건강한 사회의 것인가. 영국 켄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명백한 불쾌감을 표현한다. 이 모든 징후는 ‘21세기의 무교양주의’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능동적 진리 탐구 대신 주입식 지식과 산학협동에만 몰두하고 있으며, TV 황금시간대는 다큐멘터리 대신 갇힌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공연장과 전시장은 쉬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고발이다.

이 같은 무교양주의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적 도구주의다. ‘경제 또는 다른 목적에 쓸 만한가’라는 척도로 지식과 문화의 가치를 재단한다는 것. 영국 예술부 장관 블랙스턴은 예술이 ‘고용 기회를 늘리고 불평등을 제거하고 범죄를 예방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같은 효과가 없다면? 예술이란 무가치한 것인가.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유포시킨 지적 다원주의 또는 탈중심주의도 지식과 교양의 퇴보에 큰 몫을 했다.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던 계몽주의 시대와 달리 이제는 ‘페미니스트’의, ‘흑인’의, ‘제3세계’의 눈으로 본 새로운 낱낱의 진리가 득세한다. ‘보편적’ ‘절대적’이란 왕관을 반납한, 주관적 견해와 해석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진리’가 예전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무엇보다 대중을 어린애로 취급하는 ‘어리광 받아주기’야말로 오늘날 지적 퇴보의 주범이라고 저자는 질타한다. 대중의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이는 때로 다원주의와 손잡기도 한다. ‘수준 높은’ 문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특정한 지역과 특별한 시대의 문화를 다른 것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므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떠들썩한 잔치나 구경거리가 문화의 본질인 양 치부된다.

“진짜 참여란 연구하고 개념을 배우고 깊이 몰두하는 것이다. 떠들썩한 파티를 참여라고 생각하면 세련된 취향도, 판단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문화적 아부의 정치학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주문한다. 엘리트주의를 청산한다면서 대중이 가진 지적 잠재력을 도외시하는 정책 결정자들이야말로 실제로는 대중을 경멸하는 진짜 ‘엘리트주의자’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적 하강을 미화하는 풍토에서는 위기가 닥칠 때 전문가도, 대중도, 그 누구도 극복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도구주의적이며 무교양주의적인 엘리트들의 세계관을 포기하도록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대중의 감성과 이성을 위해 사상전을 수행해야 한다. 어떻게 수행하느냐, 그것이 이 시대의 핵심 화두가 될 것이다.” 원제는 ‘Where have all the intellectulals gone?’(2004년).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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