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패잔병 2명, 필리핀 민다나오섬 산악지대서 60년 은둔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코멘트
60여년 전 모습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60년 만에 나타난 나카우치 쓰즈키 상등병의 일등병 시절 모습. 말을 탄 이 청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도쿄=교도 연합
60여년 전 모습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60년 만에 나타난 나카우치 쓰즈키 상등병의 일등병 시절 모습. 말을 탄 이 청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도쿄=교도 연합
옛 일본군 장교와 사병 등 80대 2명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산악지대에서 60년간 은둔 생활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일본에 돌아가기를 바라면서도 전투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전력 때문에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전했다.

▽60년 만의 생존 확인=올해 2월 일본 후생노동성은 ‘옛 일본군 육군 제30사단의 장교와 사병이 필리핀에 생존해 있다는 얘기가 있으니 이들의 귀국을 도와 달라’는 탄원서를 접수했다. 탄원서를 제출한 이는 이들과 같은 부대에 소속됐던 옛 전우였다.

정보 수집에 나선 일본 정부는 민다나오 섬 일대에서 목재 관련 사업을 하는 한 일본인으로부터 이 섬 남부 제너럴산토스 지역에서 옛 일본군으로 보이는 2명을 찾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일본 정부는 이들이 30사단의 수색중대 중대장인 야마가와 요시오(山川吉雄·87) 중위와 같은 부대의 나카우치 쓰즈키(中內續喜·85) 상등병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설마 살아 있을 줄이야.‘ 나카우치 상등병의 생존 사실이 알려진 27일 친척 나카우치 요시코 씨가 그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

나카우치 상등병의 호적에는 ‘1945년 6월 18일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전사’라고 기록돼 있는 등 두 사람 모두 1945년에 전사한 것으로 처리돼 있다.

이들이 생활해 온 산악지대는 모로 이슬람해방전선(MILF) 등 반정부 게릴라군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지역. 작년 말 현지에서 조사활동을 벌인 ‘30사단 전우회’ 측은 두 사람이 모로족의 보호를 받았으며 민다나오 섬에는 57명의 옛 일본군이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은 두 사람은 최근까지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는 필리핀의 반정부 게릴라 부대에 합류해 전술교육 등을 맡아왔다는 설이 있다고 전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현지 여성과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다는 설도 있다는 것.

30사단은 일본 군국주의의 패색이 짙던 1943년 6월 평양에서 편성된 일본 육군의 마지막 현역 사단. 본래는 대(對)소련전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동남아시아 전황이 급박하게 전개되자 1944년 4월 민다나오 섬에 상륙했다.

30사단은 미군 전투기의 공습을 받아 뿔뿔이 흩어졌으며 1만2000명 이상이 숨졌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들이 2차대전이 끝난 사실을 몰라 현지에 남은 것인지, 결혼은 했는지, 생계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파악한 뒤 이들의 귀국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 치안상태가 나쁜 데다 이들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중개인과의 연락이 끊어져 27일 밤 12시(한국 시간) 현재까지 면회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노다의 신화’ 재현?=이들이 귀국하면 1972년 미국령 괌에서 생환한 옛 육군하사 요코이 쇼이치(橫井庄一·당시 56세·1997년 사망)와 1974년 필리핀 정글에서 살아 돌아온 옛 육군 소위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당시 51세) 씨에 이어 31년 만에 돌아온 옛 일본군이 된다.

일본 열도는 두 사람의 귀환이 일본의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정글에서 1인 전쟁을 고집하다 옛 상관의 투항명령서를 받고서야 일본에 귀국한 오노다 씨의 신화를 재현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흥분하고 있다. 오노다 씨는 일본 정부가 수색대를 보내고 스스로 패전을 알리는 전단을 보았는데도 종전을 믿지 않았으며, 1974년 직속상관이 직접 찾아가 투항 명령을 하자 그제서야 정글에서 나와 당시 일본 사회에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일본 전체의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던 오노다 씨는 1975년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브라질로 이주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