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전문가들이 본 ‘의문사위 김형욱 사건 발표’ 의문점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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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26일 ‘김형욱(金炯旭)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중간 결과를 발표했지만 오히려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일선 수사 현장에서 ‘실체적 진실’과 씨름해 온 베테랑 수사 전문가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들은 무엇보다 조사 주체와 절차, 과정 등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조사 대상 행위의 주체였던 국정원이 일부 관련자의 일방적 진술만을 토대로 조사했다는 것이다. 절차의 진실이 지켜지지 않은 결과의 진실을 누가 믿겠느냐는 지적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林俊泰) 교수=가장 큰 문제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반 살인사건에서도 관련자들의 진술을 모두 종합한다.

이 사건에서도 실질적으로 김형욱을 죽이는 데 동참했던 행동대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만 진실을 알 수 있다. 이상열(李相悅) 전 주프랑스 공사를 비롯해 살아 있는 관계자들을 모두 조사한 뒤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이런 식의 조사 결과는 신뢰하기 힘들다.

▽김형태(金亨泰·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변호사=무엇보다 김형욱의 시신을 낙엽으로 덮어 두고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간다. 시신이 발견되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인데 시신 처리를 엉성하게 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김재규(金載圭)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지시했다는 부분도 이해하기 힘들다. 김 부장이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그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머리에 7발을 쐈다는 부분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면 총을 난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정 요원들한테 고용된 동유럽인들은 김형욱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조사 발표대로라면 김형욱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이므로 급소에 1, 2발 발사하고 확인 사살 차원에서 1발 더 발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출신의 L 변호사=진실위의 발표는 신현진(가명)이라는 당시 중정 현지 연수생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어학 공부를 하러 간 연수생이 동유럽인 2명을 포섭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진실위의 발표에 따르면 김형욱은 이 공사와 신 씨, 외국인 킬러 2명이 타고 온 승용차의 조수석에 순순히 탑승했다.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던 김형욱이 가격을 받기 쉬운 조수석에 타고, 킬러들은 독침을 준비한 상태에서 독침도 쓰지 않고 주먹으로 김형욱을 때려 실신시켰다는 조사 결과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살해에 쓰인 권총은 사건의 결정적 증거다. 지문이나 혈흔이 묻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위는 “사용된 권총은 분실했으며 신 씨가 현장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권총 찾는 것을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조사 절차와 결과에 이처럼 허점이 많으니 무슨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억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 시내 경찰서 수사관=김형욱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범행이다. 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 시신 처리 문제나 총기 분실 문제 등 허술한 고리들이 많은데 중정과 관계된 사건인 만큼 사건 자체가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형욱의 동선이나 살해 계획, 자금 지원 부분들이 분명 보고가 됐을 것이고 이것이 문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 사람의 증언에 의존해 중간 발표를 하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현장 검증도 없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수사의 ABC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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