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0년을 향한 성찰과 전망]<5·끝>피에르 레비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코멘트
피에르 레비 교수(왼쪽)와 김성도 교수가 사이버공간의 탄생에서 비롯된 문명사적 변화와 한국의 선도적 역할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전영한 기자
피에르 레비 교수(왼쪽)와 김성도 교수가 사이버공간의 탄생에서 비롯된 문명사적 변화와 한국의 선도적 역할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전영한 기자
피에르 레비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사이버공간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는 인터넷으로 인해 일어난 삶의 변화를 새로운 문명의 탄생으로 파악한다. 그는 이를 ‘집단적 지성(collective knowledge)’과 ‘누스페어(noosphere·정신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류는 인터넷이라는 초현실적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종 정보와 지식을 집적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집단적 지성’을 성취하게 됐고, 이의 발현을 통해 개개인의 정신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차원의 ‘영성적 교류의 장(누스페어)’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정보의 경제’라는 주제로 인터넷 정보혁명의 인류학적 문명사적 의미를 발표한 그를 김성도(金聖道·언어학) 고려대 교수가 25일 오후 고려대 우당관에서 만나 대담을 펼쳤다. ▽김 교수=이번 고려대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당신은 이제 인류가 새로운 문명 속에 진입하는 과정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같은 새로운 문명을 ‘정보 경제(Economy of Information)’라는 개념으로 특징지었다.

▽레비 교수=경제(economy)와 생태(ecology)는 모두 ‘집’ 또는 ‘더불어 살기’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그런 맥락에서 정보 경제란 정보의 마케팅 및 소비와 같은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종류의 생각들의 생태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계화 문명과 더불어 기술 종교 정치 등 모든 인류의 사상과 아이디어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세계적 차원의 공통적인 에코 시스템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인류가 농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며 생물학적 생명을 제어할 수 있었던 신석기 혁명에 비교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상징적 생명과 문화적 생명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당신은 이번 강연에서 새로운 문명 속에서 한국은 특권적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레비=한국은 새로운 정보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 월등하게 많은 사용자 수를 자랑하며, 초고속 인터넷망을 비롯해 정보 인프라 구축이 탁월하다. 한국이 지닌 문화적 개방성도 중요하다. 한국은 과학, 기술, 종교 등 서구의 문화 전반을 개방적 마인드로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동양의 문화적 전통과 뿌리를 보존하면서, 동서 문명의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갖고 있다. 정리해서 말하면 한국인들의 이 같은 문화적 혼용과 지식을 향한 열린 마음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김=인문학의 핵심적 개념인 텍스트 개념은 사이버공간의 세계에서 해체되는 것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레비=책과 텍스트 개념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텍스트의 특정 매체와 형식으로서의 책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지라도 그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다. 활자의 역할은 미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는 사라질 수 없다. 텍스트의 문명은 이제 막 도래한 상태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공명을 줄 수 있는 ‘의미의 지대’(semantic zone)가 열리고 있다.

▽김=당신은 웹이 인류 커뮤니케이션 문명의 변천을 완결 짓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자료들이 가상적으로 상호 연계되며, 모든 인류의 기호들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 언어의 궁극적 단계인가.

▽레비=그렇지 않다. 디지털화는 결코 종료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활자 자료는 디지털화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다. 마치 농업의 시초 단계처럼, 특정 토양에서 쌀 밀 옥수수 등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던 것처럼, 웹의 공간 역시 그것의 잠재력을 알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김=당신은 사이버스페이스와 웹을 가리켜 아이디어의 생태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웹과 인터넷이 그렇게 생각처럼 ‘친 생태적’인 것 같지는 않다. 게임에 몰입해서 사회적 정서적 인간성을 상실하는 젊은이들이 양산된다.

▽레비=내가 말하는 생태시스템은 가치판단을 수반하는 개념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비디오 게임에 몰두해서 가족과의 식사를 거부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게임들이 존재한다. 나름대로 복잡한 전략을 요구하며, 학습과 노동에 대한 개념을 요구하며, 나름대로의 심미성을 갖추고 있다. 나는 이 같은 게임들 속에서 새로운 공적 공간의 창출 가능성과 새로운 사회화 과정을 목격한다.

▼피에르 레비 교수▼

△1980년 프랑스 소르본대 과학 역사 석사

△1983년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 박사

△1991년 스위스 뉴롭연구소 공동창설

△현재 캐나다 오타와대 집단지성 석좌교수

▼김성도 교수▼

△1986년 고려대 불문학과 졸업

△1991년 프랑스 파리 10대학원 언어학 박사

△1993년 국제기호학회 간행

Semiotica지 최우수 논문상 수상

△현재 고려대 언어과학과 교수

정리=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