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최대 산별노조총연맹 내분…도마오른 노조 정치色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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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을 대로 곪은 미국 거대 노조의 환부(患部)가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민주노총 격인 미국 최대 노조연합체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이 집권파와 개혁파의 대립으로 둘로 쪼개질 위기에 처한 것.

비민주적 운영과 지나친 정치편향성이 미국 노조를 위기로 몰고 간 핵심 원인이라고 최근 미국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노조는 운영방식과 가입률 등에서 한국 노조와 차이가 있지만 조합원을 등한시하는 집행부의 전횡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치중해 온 관행은 최근 신뢰도 추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노조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조합원과 ‘따로 노는’ 집행부=AFL-CIO에 소속된 5개 산별연맹은 17일 폭탄선언을 했다. “7월 대의원 총회 때까지 집행부가 개혁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노조를 탈퇴하겠다”고 발표한 것.

이날 선언에 참가한 서비스 건설 숙박 식품 운송업 노조는 AFL-CIO 전체 조합원(1300만 명) 의 40%에 이르는 500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들은 존 스위니 AFL-CIO 위원장이 물러날 것도 요구했다.

개혁파를 이끄는 앤드루 스턴 서비스업노조연맹(SEIU) 위원장은 “1995년 취임한 스위니 위원장 체제가 10년간 장기집권을 하면서 관료주의에 물들어 조합원 확대와 노동조건 향상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노조 가입률 하락이 스위니 체제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것. 공공노조의 경우 35%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업노조 가입률은 매년 추락을 거듭해 지난해 7.9%까지 떨어졌다.

이 밖에도 AFL-CIO 집행부가 워싱턴에 수백만 달러짜리 본부 건물을 짓고 직원을 500여 명이나 늘리는 등 귀족주의에 빠져 있다고 개혁파들은 주장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스위니 위원장은 “신규 조합원 확대에 2250만 달러의 예산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개혁파들은 AFL-CIO의 한 해 예산 1억2000만 달러 중 절반 정도인 6000만 달러를 신규노조 확대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정치세력화 논란=미국 노조의 갈등은 정치 참여라는 문제를 놓고 더욱 첨예하게 갈라지고 있다. 집행부는 선거 때마다 8500만∼1억 달러의 자금을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몰아줄 정도로 친(親)민주당 성향을 갖고 있다. 진보 성향의 의원과 주지사를 많이 뽑아 이들을 통해 노조가 정치세력으로 부상해야 한다는 것이 스위니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AFL-CIO 노조원들 사이에는 “노조가 민주당의 현금지급기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노조가 환경보호, 수입규제, 세금인상 등 민주당 주장에 집착하다보니 공화당이 주도하는 일자리 늘리기 노력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파에 속한 해럴드 샤이트버거 소방노조연맹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대선 때 조합원 3명 중 1명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뽑았을 정도로 조합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다”면서 “노조가 정치적 색채를 줄이고 후생복지 향상 등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이 매년 수만 명에 달하는 조합원이 탈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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