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7>맹자-맹자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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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애초에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더 자라서는 누군가의 형제 또는 자매로, 누군가의 벗으로, 누군가의 학생으로, 누군가의 연인으로, 누군가의 아내 또는 남편으로, 누군가의 동료로, 누군가의 윗사람 또는 아랫사람으로. 이런 점에서 우리 자신의 몸은 수많은 관계들이 지나가고 중첩되는 교차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관계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은, 삶이란 수동성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개개인이란 그런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전체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거나, 개개인은 자신이 진입하게 된 관계에서 관행처럼 지켜지고 있는 규칙을 그냥 따르기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규칙을 따랐을 때에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거부하고 싶은 공허함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이란 허깨비 같은 삶이라고 외친다고 해서 바로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관계 맺기를 부정한다는 것 역시 허무주의에 쉽게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 맹자의 철학적 출발점이었다.

맹자가 보기에 극심한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중국에는 두 가지 극단이 존재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타인을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는 부르짖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긍정해야 한다는 부르짖음이었다. 맹자는 이런 양 극단을 거부하고 자신은 양자의 중도를 걷겠다고 말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 그리고 그 관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일은 여러 관계가 구성하는 전체에 헌신하는 것이나 여러 관계에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규칙을 맹종하는 수동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함을 통해 능동적으로 접근해 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한 사람만이 타인에 대해 진실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표출되었다. 첫 번째로는 성선설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통해 인간이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본래부터 갖고 있음을 그리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길은 철저히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것임을 주장하고, 각 개인이 스스로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것을 촉구했다. 두 번째로는 왕도 정치론이다. 이는 맹자의 성선설과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식인과 지배층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맹자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배층과 지식인이 솔선수범해야 하며 그들이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거나 냉소할 때 타락한 세상을 가져오게 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정치, 인간의 본성 등에 대한 문답과 논쟁을 통해 전개해 나갔고 그 내용들은 ‘맹자’에 대화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 전해지는 ‘맹자’는 한(漢)나라 시대 조기(趙기)가 당대 전해지던 맹자의 저술을 정리한 ‘맹자장구(孟子章句)’를 토대로 한 것이다. 현재 대학생 수준에서 읽을 만한 ‘맹자’ 번역으로는 성백효 선생의 ‘맹자집주’가 있다. 이 책은 원문에 매우 충실하며, 전통시대 가장 많이 읽힌 주희(朱熹)의 주석이 완역되어 있다.

정원재 서울대교수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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