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묵]이광재와 우통수

  • 입력 2005년 5월 26일 03시 21분


코멘트
‘진실은 그 어떤 권력보다 강하다. 진실과 정의는 통한다. 정의는 떳떳한 명분에서 나오고, 떳떳한 명분이 있으면 두렵지 않다. 진실이 정의의 무기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지난해 펴낸 미니 자서전 ‘우통수의 꿈’에서 다짐한 내용이다.

‘우통수’는 1987년 실측 결과에 따라 태백의 ‘검룡소’에 자리를 내줬지만 오랫동안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던 샘물로, 이 의원의 고향인 강원 평창 오대산에 있다. 이 의원은 ‘우통수가 (물의) 비중이 높아 한강의 중심부를 가장 빠르게 이끌고 나간다’고 썼다. 그러면서 ‘역사의 우통수가 되자. 합력으로 대사를 이룬다. 협력이 아니라 합력이다’고 했다.

고향의 명산(名山)과 청수(淸水)를 가슴에 새기며 진실과 정의를 좌우명으로 삼으려던 이 의원이 병역 기피를 둘러싼 ‘진실 게임’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원래 논란의 핵심은 그가 과연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오른손 검지를 잘랐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3년에 그가 본보 기자들을 속이고 손가락이 잘렸다는 인천 부평공장으로 데리고 다닌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거짓말’의 문제로 변질됐다.

보통의 경우 ‘단지(斷指)’라는 것이 너무나 끔찍한 일이어서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럽지만 현 정권 실세의 도덕성과 연결되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게 돼버린 것이다.

2년 전 그를 따라 부평 일대를 하루 종일 헤맸던 본보 기자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그때는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다. 피해 가고 싶었다”는 이 의원의 짤막한 해명으로 그 기자의 분노와 의문을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그 기자는 “없는 공장까지 둘러대면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이 의원은 본보에 관련 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의원이 손가락을 자른 이유로 내세운 ‘시대 상황’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독재정권에 강제 징집을 당한 운동권 학생들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 비극이 비일비재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조직’의 보호를 위해 병역을 기피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있지도 않은 공장으로 기자들을 끌고 다니기보다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그때 진솔하게 밝혔더라면 아마도 별 탈 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이 의원은 최근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이번이 세 번째 태풍인데 그냥 불고 지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유전 의혹 기사와 관련해서는 ‘살기’를 느낀다고 했다. 그가 유전 의혹에 연루됐는지는 검찰 조사에 맡기면 된다.

그러나 공인의 ‘거짓말’은 바람처럼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가 저서에서 한 독백처럼 ‘그저 그렇고 그런 하이에나가 아니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 진실이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조언에 또 살기를 느낄지 모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의원직 사퇴라는 외로운 결단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것이 ‘우통수의 꿈’을 계속 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최영묵 사회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