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877년 이사도라 덩컨 출생

  • 입력 2005년 5월 26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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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오직 두 개의 동기를 갖고 있다. 사랑과 예술이 그것인데 이들은 끊임없이 싸운다. 왜냐하면 사랑도, 예술도 나의 전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무용의 개척자 이사도라 덩컨의 삶은 자신의 말대로 치열하게 그녀를 요구한 ‘사랑’과 ‘예술’에 바쳐진 생애였다.

그녀는 1877년 5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네 아이를 데리고 이혼한 덩컨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했을 때 냉동한 귤과 샴페인만 먹었다고 한다. 자서전에 덩컨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부터 나는 춤췄다. 귤과 샴페인은 아프로디테의 음식이었으므로.” 삼류 무용수로 살다 22세 때 가축수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에겐 새 세상이 열렸다. 엄격한 격식에 따른 전통 발레에 익숙해 있던 유럽에서 그녀의 춤은 충격이었다. 님프처럼 거의 옷을 걸치지 않고 맨발로 춤을 추는 그녀를 보려고 군중이 쇄도했다.

덩컨이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에게 “당신의 머리와 나의 몸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완벽하겠죠?” 하고 말을 건넸다가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보셨나요?” 하고 면박을 당했다는 일화는 ‘멍청한 미인’과 ‘못생긴 천재’에 대한 유머로 회자된다. 그러나 덩컨은 ‘멍청한 미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의 단순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의 노동과 조사를 거듭했다. 스스로 “내 춤의 스승은 니체”라고 말하며 인간의 영혼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하는 고도의 예술로 춤을 확립했다.

“인생의 10%가 아니라 전부를 던져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녀는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행복하지는 못했다. 독신을 고수하면서도 연인들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1913년 보모와 함께 나들이를 나갔던 아이들은 차 사고로 모두 목숨을 잃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녀는 러시아에서 15년 연하인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을 만나 1922년 결혼했다. 그러나 3년 뒤 예세닌마저도 권총 자살로 덩컨의 곁을 떠났다.

지상의 삶과 끝내 화합할 수 없었던 이 ‘아프로디테’는 죽음까지 극적이다. 1927년 드라이브를 하러 친구의 스포츠카에 탔다가 목 뒤로 넘긴 빨간 스카프의 끝자락이 자동차 바퀴에 끼는 바람에 목이 졸려 숨졌다.

차에 오를 때 그녀가 친구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이랬다.

“안녕, 나는 영광을 향해 떠나.”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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