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反核’ 한마디 없이 反戰한다는 한총련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41분


코멘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의장을 비롯한 일부 간부가 어제 금강산에서 폐막된 ‘6·15 공동선언 실천 남북 대학생 상봉 모임’에서 북측 학생들과 ‘남북 대학생 민족자주 반전(反戰) 평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민족의 힘으로 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반전 평화 운동을 벌여 올해를 자주와 통일의 첫해로 장식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됐다. 평화운동을 하려면 7000만 민족을 볼모로 핵 모험을 벌이는 김정일 정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중단을 촉구하는 게 먼저여야 한다. 북한 핵문제로 인한 안보 불안,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 강대국들에 머리 숙여야 하는 외교적 굴욕과 국력 낭비, 남남(南南) 갈등, 경제 위축 등의 고통을 알면서도 반핵(反核)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면 대체 어느 나라 학생인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하고서도 이를 깬 장본인이 김 위원장이다.

반전 평화운동도 궁극적으로는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건설에 목적이 있다. ‘민중해방’을 부르짖는 한총련이 기본인권마저 누리지 못하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진정으로 ‘민중’을 말하려면 북측 학생들과 북녘 동포의 인권 문제를 놓고 한 판 토론이라도 벌였어야 했다. 그런 문제의식도, 용기도 없이 민족 운운하니까 ‘김정일 정권 추수(追隨)주의자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통일부가 법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방북을 승인해 준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민족자주’의 구호 아래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한총련은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다. 이적단체의 구성원이 국가보안법상 반(反)국가단체인 북한 측 구성원과 회합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에 속한다.

통일부는 이들이 “개인 자격으로 간 것”이라고 했지만 북측은 한총련 의장의 공식 방북이라며 크게 선전했다.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이러니까 다음 달 정동영 장관의 평양행을 앞두고 통일부가 ‘길 닦기’ 하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