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 국적포기 불허 새 국적法 24일 전격발효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20분


코멘트

《병역 기피 목적의 국적 포기를 막기 위해 개정된 국적법이 24일 전격 발효됐다. 법무부는 이날 “개정 국적법을 다음 달부터 시행할 방침이었지만 개정안이 통과된 뒤 국적 포기자가 크게 늘어 법률 공포시기를 앞당겼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4일 이후 23일까지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모두 1820명. 이 중 128명은 국적 포기를 철회해 실제로는 1692명이 국적을 바꿨다. 지난해 한 해 동안의 국적포기자 1343명을 훨씬 웃도는 숫자다.》

▽눈치 보며 국적 포기=개정 국적법 시행 전날인 23일 오후 4시경 서울 양천구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접수창구 앞에 20여 명이 서 있었지만 이 중 국적 포기 또는 철회를 위해 온 민원인은 2명뿐이었다.

국적 포기를 신청하려던 한 중년 여성은 기자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반면 김 모(47·여) 씨는 “이달 초 아들의 국적을 포기했다가 오늘 철회하러 왔다”며 “대학교수인 남편이 제자들 보기 민망하다며 밤잠을 설쳐 고민 끝에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버리려는 신청자가 하루 100명 이상 몰려 한동안 곤욕을 치렀던 이곳 사무실 직원들도 어느 정도 평정을 찾은 느낌.

한 직원은 “접수 담당자를 1명에서 3명으로 늘렸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다”며 “신청자들은 대개 남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일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논란=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포기자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이 법안을 마련한 홍준표(洪準杓) 한나라당 의원을 칭찬하는 누리꾼(네티즌)이 급증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긴급 여론조사를 한 결과 새 국적법에 찬성한 비율은 무려 97%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홍 의원이 국적 포기자에게 재외동포로서의 특혜를 제한하는 내용의 재외동포 관련법과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국적 포기자의 신상 공개까지 추진하자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병역기피 의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명단까지 공개해 인민재판 하듯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전문가 생각은=새 국적법이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자칫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영수(張永洙)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포기한 이들에게는 당연히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을 규제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이 범위를 최소화시켜 엉뚱한 외국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적 포기의 목적이 병역 기피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가릴 수 있는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

또 국적법 개정 소동이 빚어지면서 이중국적 허용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임지봉(林智奉)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국적의 의미가 약화되고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중국적의 악용을 방지하는 법률을 정비한 뒤 우리나라도 이중국적의 허용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