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0년을 향한 성찰과 전망]<3>日 가라타니 고진 교수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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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기자
이종승 기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64) 일본 긴키(近畿)대 교수는 일본 현대 지성계의 스타다.

문학평론가에서 출발해 역사, 건축, 철학 등 전방위 문예평론가로 변신한 그는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라 할 만큼 한국의 젊은 인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는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 ‘은유로서의 건축’(한나래),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 ‘윤리21’(사회평론), ‘유머로서의 유물론’(문학과학사), ‘일본 정신의 기원’(민음사), ‘언어와 비극’(b) 등 10여 권에 이른다.

비서구인의 주변부적 문제의식에 서양의 근현대사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결부시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그의 사유방식은 서구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그는 미국 예일대 방문교수를 거쳐 1997년부터는 컬럼비아대 교수로 정기적으로 강연하고 있다. 또 국제건축가회의인 ANY의 정기회원이기도 하다.

24일 고려대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동아시아의 이상’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그를 만나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그는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명제와 경기파동이 50∼60년 또는 120년 단위로 발생한다는 러시아 경제학자 콘트라티예프의 이론을 결합해 “역사는 60년 또는 120년 단위로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가라타니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일본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지만 그것은 군국주의가 발흥한 1930년대가 아니라 근대국가 수립 초창기인 1880년대로의 회귀”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1880년대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의 ‘탈아론(脫亞論)’과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의 ‘범(汎)아시아론’이 경쟁하다 결국 탈아론이 승리하면서 서구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됐다는 설명이다.

1880년대는 이미 일본의 조선 침략이 시작된 시기라는 점에서 결국 군국주의의 부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의 북한과 중국은 1880년대의 조선과 청(淸)을 닮아가고 있다. 북한은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중국은 개방화를 택했지만 결국 내부모순으로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처럼 멀지 않은 시기에 무너질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일본 정부가 과장하면서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은 지금이 아니라 중국이 붕괴한 다음 재무장한 일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 추세대로라면 결국 새로운 청일전쟁(1894년)으로 귀결된다.”

그는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를 ‘주변국가를 아우르는 공동체의 확대’라는 이상을 유지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접근했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후 ‘제3제국’의 꿈을 ‘유럽연합(EU)’의 형태로 유지 발전시켰던 반면, 일본은 패전 후 ‘대동아공영권’을 깨끗이 포기하고 아시아와 단절을 추구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독일은 유럽 통합이란 이상을 위해 이웃국가들에 과거사를 끊임없이 사죄하고 있는 반면 아예 서구화를 택한 일본은 이웃국가들에 대한 죄책감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해도 인기가 높은 것을 보면서 ‘일본은 60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다가 무의식적으로 120년 전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것은 아시아를 버리고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가라타니 교수는 “19세기 초 일본과 미국은 비슷한 시기에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해 한반도와 필리핀의 식민지화를 상호 용인하며 협력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중국이 붕괴하자 갈등관계로 바뀌었다”면서 “미일관계는 중국의 변화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탈아론에서 벗어나 ‘아시아는 하나’라는 오카쿠라의 이상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비극적 반복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며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위기는 대만과 북한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 중국과 일본의 대결이 숨어있다”며 “한국이 이런 맥락에서 유일하게 중립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이 미래의 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주축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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