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 창립 50년 현주소]北 日人납치로 설땅 잃어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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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영광스러운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24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열린 일본 도쿄(東京) 외곽 조선중고교 구내의 조선문화회관. 단상엔 김일성(金日成) 김정일(金正日) 부자의 대형 초상화가 인공기와 함께 자리 잡았고 ‘공화국’을 찬양하는 플래카드도 곳곳에 내걸렸다.

식전 공연이 열릴 때만 해도 분위기는 꽤 자유로웠다. 나이 지긋한 교포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큰소리로 웃곤 했다. 2층 방청석의 학생들 중에는 교사의 눈을 피해 장난을 치는 천진한 모습도 보였다.

총련의 한 관계자는 “집회 분위기가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축하 메시지 대독에 이어 서만술(徐萬述) 총련 의장이 기념사를 읽으면서 분위기는 엄숙해지기 시작했다. 서 의장이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께 동포 모두의 뜻을 모아 충성을 다짐하자”고 말하자 2000여 명의 참석자 전원이 동시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시대 변화에 따라 총련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관측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연계’가 총련의 존재 근거라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총련은 1955년 5월 25일 일본에서 좌익 노동운동을 벌여 온 한덕수(韓德銖)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그 뒤 총련은 일본과 국교가 없는 북한의 공관 기능을 맡으면서 북한 지도부에 대한 돈줄 역할도 했다.

남북한의 체제 대결이 치열했던 1960, 70년대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을 상대로 일본에서 ‘남북한 대리전’을 벌였고 ‘대남 공작의 일본 내 거점’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 불황으로 주수입원인 교포 경제권이 위축된 데다 북한의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총련 조직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총련의 쇠락을 결정짓는 치명타가 됐다.

냉전 종식에 이어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일본 내 혐북(嫌北) 감정이 고조되면서 총련계 교포 중 총련을 이탈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재일동포 61만여 명 중 80%가 민단계, 20%가 총련계로 알려져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총련 50주년을 맞아 보낸 메시지에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때 총련에서 활동했던 원로 교포는 “총련도 결국 ‘조국’인 북한 체제의 운명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사망때까지 46년간 1인체제▼

총련 의장은 사실상 종신제로 임기 제한이 없다. 한덕수 전 의장은 1955년 창립 이후 2001년 94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46년간 1인 지배체제를 유지했다.

2001년부터 총련을 이끌고 있는 서만술 의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총련 조직국장과 사무총국장 등 핵심 라인을 거친 한덕수의 직계. 한 의장 사망 후 총련 안팎에선 대북 송금사업을 주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허종만(許宗萬) 책임부의장의 승진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서 의장의 낙점이었다.

위축된 총련 조직을 추스르려면 성품이 부드럽고 인화에 강점이 있는 서 의장이 적임이라고 북한 당국이 판단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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