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주우진]문화 팔아야 車도 잘 팔린다

  • 입력 2005년 5월 24일 03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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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준공식이 열렸던 5월 21일 바로 그날 정세영 전 현대차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특별히 아쉬웠던 점은 대부분의 현대차 관계자들이 미국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국 땅에서 고인을 애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차는 정 전 회장의 ‘포니 신화’로 대량생산의 기틀을 마련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정몽구 회장은 ‘품질 신화’를 창조하여 이제 현대차는 품질 좋은 차로 세계에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자동차 산업은 지난 35년 동안 고용, 수출, 납세 등에서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한 산업이며 앞으로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결코 쉬운 산업이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경영학 이론서에서 가격경쟁이 적고 대체재가 적은 시장을 ‘블루오션(Blue Ocean)’이라고 하는데 자동차 시장은 가격경쟁이 치열하고 대체재가 많은 ‘레드오션(Red Ocean)’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산업 선두기업의 이익률을 볼 때 자동차 산업의 이익률은 5% 내외이고, 전자 산업의 이익률은 15%, 그리고 게임 산업의 이익률은 30%에 이른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은 박빙의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자재 인상, 환율 변동, 내수 부진 등 약간의 외부 충격만 와도 곧바로 적자경영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지금까지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경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한 기업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노력으로 원가를 줄이면 경쟁사도 살아남기 위해 곧바로 대응하고, 한 회사의 품질지수가 우수하게 나오면 경쟁사들도 곧 따라잡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는 좋은 차를 싸게 사는 혜택을 보지만 정작 자동차 회사들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 등 생산비가 낮은 국가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 자동차 회사들도 결국은 ‘레드오션’에 침몰해 버리고 말 것인가?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일부 앞서가는 유럽 및 일본 자동차 회사의 사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회사들은 자동차 산업의 일반적인 특성을 뛰어넘는 문화마케팅을 통하여 ‘블루오션’ 전략을 펴고 있다. 즉 도요타는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기업, 혼다는 꿈을 이루어 주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각 부각함으로써 보다 고차원적인 소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벤츠와 BMW는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유럽의 그랑프리 레이싱 참여를 통하여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회사들도 문화마케팅을 통하여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회사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아시아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어떨까.

이를 위해 한 가지 제언을 하자면 우리 자동차 회사가 ‘아시아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아시아인의 생활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재단의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그러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기업은 그 지역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고 이는 한국 자동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슬론재단, 포드재단과 같은 재단이 한국에도 만들어져 아시아인들을 위한 활동을 펼친다면 우리 자동차 회사들도 영리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문화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주우진 서울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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