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한승원]꿈틀거리는 신록을 느끼며

  • 입력 2005년 5월 23일 0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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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 놓고 액정화면에 나타난 꺼끌꺼끌하고 울퉁불퉁한 문장 하나 때문에 절망한다. 소설은 시를 향해 날아가야 하고, 시는 음악을 향해 날아가야 하고, 음악은 무용을 향해 날아가야 하고, 무용은 우주의 율동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우주의 율동은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 것인가. 시원(始原)이다. 태극의 무극이다.

가슴이 답답하여 심호흡을 하면서 고개를 발딱 뒤로 젖힌다. 마당의 초여름 신록이 서재 안을 엿보고 있다. 내 눈길이 달려가자 신록은 몸을 외튼다. 꿈틀거린다. 출렁거린다. 그들은 예사 형상이 아니다. 신이 되어 어른거리고 있다. 신은 늘 바람으로 자기 모습을 보인다고 들었다.

“멍청하고 답답한 풋늙은이, 살 줄만 알고 죽을 줄은 모른다. 쯧쯧” 하고 꾸짖는다. 그만 접고 바람을 쐬러 나가자.

오전 11시. 마당으로 나서면서 ‘아하’ 하고 소리친다. 아카시아 향이 토굴 앞마당을 점령해 버렸다. 넋이로다. 넋이로다. 살아생전에 남정네 하나 꼬여 제 품에 넣어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얼금뱅이 여인의 혼령. 그 삶이 얼마나 한스러웠으면 저렇게도 진한 향기를 뿜어 세상을 홀리려고 들까.

그 향기에 취한 채 감나무 그늘 밑에서 한 바퀴 맴을 돈다. 대밭 저쪽의 뒷산을 구름처럼 하얗게 덮은 아카시아 꽃들을 쳐다본다. 허기진 듯 들이켠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향기에 취하면 누구든지 넋이 된다.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암갈색 다람쥐 한 마리가 마당을 건너간다. ‘엇! 저놈이!’ 문득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다본다. 아카시아 숲 속에서 휘파람새가 숨 가쁘게 울어 댄다.

연못으로 간다. 열서너 평쯤 되는 연못이다. 자수련 꽃이 오늘은 몇 송이나 피었을까. 하나 둘 셋 넷…마흔여섯 송이. 꽃송이를 헤아리는 재미가 좋다. 백수련 꽃은 아직 한 송이도 피지 않았다. 바야흐로 꽃대가 하나 올라오고 있을 뿐이다. 자수련의 생명력보다는 백수련의 그것이 더 약하다.

수련 잎사귀들 사이의 구중중한 수면에 어려 있는 꽃 그림자가 더 그윽하다. 나도 나라는 실체보다는 죽은 다음의 그림자가 더 그윽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은 만들어진다. 비단 잉어들이 유영한다. 움직이는 꽃.

연못 가장자리에 서 있는 4년생 살구나무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저 열매들을 과감하게 많이 솎아 내 줄 것을 그랬다고 후회한다. 저 연약한 가지들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찌할까.

전정가위로 철쭉나무 우듬지를 잘라 주기로 한다. 꽃을 본 다음에는 전지해 주어야 한다고 농장을 운영하는 제자가 가르쳐 줬다. 전정가위를 들고 철쭉 꽃밭으로 들어선다. 며칠 째 자르고 있다. 꽃 달려 있던 가지 아랫부분을 이발하듯이 잘라 준다. 여름철에 더 많은 움이 나올 것이고 다음 해 봄에는 더 풍성한 꽃송이들이 피어날 것이다. 가위질이 힘들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많이 가진 만큼 고달픔을 감내해야 한다. 내 삶도 욱 자라는 부분을 이렇게 과감하게 전지해 가야 한다. 무엇이 삶을 욱 자라게 하는가. 탐욕이다.

한승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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