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내한 공연

  • 입력 2005년 5월 23일 08시 28분


코멘트
앨빈 에일리 무용단의 대표작 '계시'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빈체로
앨빈 에일리 무용단의 대표작 '계시'의 한 장면. 사진 제공 빈체로
그들은 춤을 추지 않았다. 단지 반응했을 뿐이다.

19∼21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앨빈 에일리 무용단의 내한 공연은 생각하고 분석하는 춤이라기보다는 느끼고 호응하는 춤이었다. 검은 몸에서 나오는 움직임들은 춤이라기보다는 동물적 직관과 신명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성적이었다. 인간적인 면모들인 위트와 전통, 섬세한 감수성과 미학적 균형 감각도 작품 곳곳에 배어 있었다.

1931년생인 무용가 앨빈 에일리. 미국에서 20세기를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순수 예술 무용가로 확고부동한 자리매김을 한 그의 예술적 성취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춤을 만난다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다민족 용광로 속에서 흑인의 문화와 정서가 어떻게 진화되어 생존에 성공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계시(Revelations)’는 미국 남부의 정서, 정확하게는 흑인 정서가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 여자들이 요란하게 흔들고 있는 부채에서는 느긋한 오후와 경박스러운 수다, 그리고 헤픈 웃음들이 한눈에 느껴진다. 하지만 그 호들갑스러움이 신경을 거스르기는커녕,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정겹다 못해 예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며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공유하고 있다는 확인, 그리고 동질감 때문이었다. 앨빈 에일리 무용단의 춤에서 만나는 이러한 솔직한 들이댐은 이성적 작용이 아니라 감성적 작용으로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앨빈 에일리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젊은 안무가들은 검은 육체의 독창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무장시켜 무용단의 굳건함을 증명한다.

힙합을 접목시킨 최근작 ‘러브 스토리’는 선율보다는 비트에 맞추어 움직인다. 통통 뛰는 육질 좋은 근육에서 나오는 움직임은 분명 흑인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힙합과 레게음악을 백인과 황인종도 노래 부르듯이 앨빈 에일리의 힙합은 인종을 벗어나 다민족 수용의 철학이 깔린 춤이었다. 간혹 보이는 라틴계와 백인 무용수가 전혀 거슬리지 않으니 말이다.

박성혜 무용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