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국회의원들]아이들 보면 언제나 안쓰럽고 미안…

  • 입력 2005년 5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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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싫어, 저리가!”

한나라당 공보담당 원내대표인 나경원(羅卿瑗·비례대표) 의원은 며칠 전 오후 11시경에 귀가해 졸린 눈을 하고 있는 큰딸 유나(13)를 안으려다 이런 말을 들었다.

가벼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유나가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해 짜증이 늘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국회 연구단체(‘장애아이 WE CAN’)를 만들어 장애우를 돕겠다고 한 내가 정작 딸내미 하나 돌보지 못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남편인 서울서부지법 김재호(金載昊) 판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내가 일찍 귀가해 돌보지만 아이들은 아직 엄마를 더 좋아하고 필요로 한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여성 국회의원들의 가정에는 ‘금배지 엄마’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경우가 적지 않다. 남편들 대부분은 자신보다 바빠진 부인 탓에 가정의 생계는 물론 육아와 교육 문제까지 짊어지고 있다. 엄마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자녀들과의 갈등도 다반사다.

▽“엄마 가지 마”=열린우리당 박영선(朴映宣·비례대표) 의원은 일찍 귀가해야 오후 9시다. 당 의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어 귀가 후에도 대개 밤 12시까지 걸려오는 각종 전화 때문에 일곱 살 난 아들과 놀아줄 틈이 없다.

남편(미국 변호사)은 지난해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박 의원에게 정치권 입문을 권했지만, 얼마 전에는 “전용으로 쓸 수 있는 공중전화 박스를 집에 만들어 줄 테니 하루만 나가지 마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2000년 남편(심규섭·沈奎燮 전 의원)과 사별한 열린우리당 김선미(金善美) 의원은 두 남매에게 엄마가 아니라 아빠다. 생계는 책임지지만 다른 엄마들이 해주는 것은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지난번 어린이날에 같이 놀아 주려고 지역구 행사장에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딸 재은이를 데려갔는데 주민들 만나 인사하다보니 어느새 재은이가 행사장 뒤에서 혼자 울고 있더라. 어찌나 서럽던지…. 그런데 어버이날에는 엄마 준다고 종이학 30마리를 접고 있는 것을 보고 더 서러웠다.”

▽혼자 크는 아이들=민주노동당 최순영(崔順永·비례대표) 의원과 노동운동가인 남편 황주혁(56) 씨는 외아들(25)이 어릴 때 노동운동을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최 의원은 “어릴 때 워낙 이집 저집에 애를 맡겨 나중에는 아이가 ‘오늘은 누구 집에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장을 지낸 재선의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경기 광명을) 의원은 남편(김형률·金衡律)도 최근까지 조달청 차장을 지내는 등 부부 모두 공직 생활로 바쁘게 살아 왔다.

전 의원은 “광명시장 할 때 우리 부부는 관사에서 살고, 아이들은 서울 방배동 집에서 따로 살았다. 아이들은 제몸이 아프면 건강보험증 챙겨서 혼자 병원에 갔는데 이를 본 의사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니?’라고 물었다고 한다”며 쓸쓸히 웃었다.

민노당 이영순(李永順) 의원은 고등학교 3학년 딸의 공부에 대해 “무슨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 같던데…”라고 말할 정도로 잘 모른다. 이 의원은 “공부는 자기가 하는 거지”라면서도 힘들어 하는 딸이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열린우리당 김현미(金賢美) 의원은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들에게 아예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전인교육을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김 의원은 두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의 ‘자유방임’ 때문인지, 김 의원이 유럽에 출장 갔을 때 큰아들을 깨우는 사람이 없어 학교에 지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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