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희]얄타회담 넘어서기

  • 입력 2005년 5월 20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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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회담.’ 올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우리의 광복 60주년을 맞아 쏟아져 나온 각종 회고물에서 이 회담은 ‘약방의 감초’다. 게다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얄타회담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거듭 비판하며 미국의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람에 이 회담의 성격에 대한 논쟁이 재연되기도 했다.

잘 알다시피, 1945년 2월 옛 소련령 크림 반도의 휴양도시 얄타에서 비밀리에 만난 미 영 소 정상은 소련의 대일전(對日戰) 참전과 전후 독일의 분할, 그리고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것은 전후 냉전질서의 큰 기둥인 ‘얄타체제’ 탄생의 결정적 계기였고, ‘은자의 나라’ 한국은 이렇게 해서 갑자기 국제적 논란의 한복판에 던져졌다.

그 뒤 60년. 외교사의 낡은 책갈피를 젖히고 얄타회담이 재론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번에 겨냥한 것은 과거 비밀협상들을 통해 소련의 영향력이 용인되고 지금도 독재국가로 남아 있는 독립국가연합(CIS), 중동 지역 등에 ‘자유의 확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 체제가 무너진 지구상에 미국식 새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목적의식의 소산이다.

그러나 그의 계산이 무엇이든 우리로서도 얄타체제의 틀 안에서 보낸 한 갑자(甲子) 동안 우리가 이룬 성취와 아직도 남은 상처를 살펴보는 중요한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우선, 60년 전 얄타회담을 포함해 일련의 국제 논의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한반도도 그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된 6자회담이 그 실상이다. 한반도는 국제논의의 주체라기보다 여전히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 북한 핵실험설에 대한 제재론에서 보듯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비타협적으로 밀고 가려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대로 ‘60년 전 비밀회담의 희생자’라는 피해의식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요즘 우리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그런 한계를 넘어서려는 안간힘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성공적인 것 같지 않다.

그 다음은 ‘이식(移植) 민주주의’의 문제다. 지금 미국이 전파하려는 민주주의의 세례를 우리는 이미 60년 전에 받았다. 옮겨 심은 민주주의가 우리 몸에 꼭 맞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지난 세월 ‘4·19’와 ‘서울의 봄’과 ‘6월항쟁’을 거치며 우리의 민주주의도 제법 우리 체질에 맞는 제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가 구별되는 점이 바로 그 대목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중요한 성취를 이루고 자신감도 확인해가고 있지만, 한반도에 얄타체제의 제약은 여전히 결정적인 요소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그런 능력과 한계의 균형점을 면밀히 살펴가며 분단체제의 극복을 향해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지난 60년 가운데 마지막 10년 이상을 지배해 온 북핵 문제가 그런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얄타체제’를 넘어서는 길도 결국은 지난 60년에서 균형감각과 지혜를 얼마나 잘 배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창희 국제부장 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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