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구촌: 21세기 인류의 삶과 미디어의 변화’

  • 입력 2005년 5월 20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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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21세기 인류의 삶과 미디어의 변화/마샬 맥루한·브루스 R 파워스 지음·박기순 옮김/257쪽·1만2000원·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잠언과 같은 문장으로 20세기 미디어 혁명을 예언해온 마샬 맥루한(1911∼1980)의 마지막 저서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예지력의 비결을 보여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 책에서 ‘테트래드(Tetrad)’라는 매우 낯선 용어를 제시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4개’를 뜻하는 이 단어는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4가지 형식적 국면을 통칭하는 용어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미디어는 한 문화에서 어떤 것을 증강시키는 한편 그 밖의 어떤 것을 퇴화시킨다. 또 그 미디어는 오래 전에 제쳐놓았던 어떤 것을 부활시키고, 그것이 지닌 잠재력을 넘어서 확장될 때는 수정 또는 역전을 거친다.

테트래드는 바로 증강, 퇴화, 부활, 역전의 네 가지 변화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뜻한다. 맥루한은 인간이 만든 어떤 인공물이든 이 테트래드를 적용하면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화폐는 거래를 촉진시키지만 대신 물물교환을 쇠퇴시킨다. 화폐는 옛날에 인디언들이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재물을 불태웠던 것 같은 과시적 낭비를 부활시키지만 신용카드와 같은 비화폐의 등장을 낳는 역전현상을 불러온다.

또 컴퓨터는 계산을 빛의 속도로 가속화시키지만 대신 인간의 암산능력 같은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연산능력을 쇠퇴시킨다. 또 컴퓨터는 ‘숫자가 모든 것’이라는 피타고라스적 사유를 부활시키고, ‘연속적인 것이 동시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문제는 연속적인 것이 동시적으로 전환된다는 어리둥절한 표현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가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뇌의 좌반구적 지각방식과 뇌의 우반구적 지각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맥루한은 읽기와 쓰기를 관장하는 왼쪽 뇌를 선형적 연속적 논리적 양적인 서양식 지각방식으로, 청각과 촉각을 관장하는 오른쪽 뇌를 전체적 동시적 직관적 질적인 동양식 지각방식으로 바라봤다.

맥루한은 지구촌 시대의 도래는 이 두 지각방식을 폭발적 광속으로 부딪치게 하고 있다며 그 충돌로 인한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시스템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정신이 왼쪽 뇌와 오른쪽 뇌를 동시에 사용하듯이 우리의 지각방식도 양자를 종합해야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설명과 함께.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면 컴퓨터가 연속적인 것에서 동시적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컴퓨터는 아날로그적 연산의 최종 결과물이지만 디지털적 직관의 세계를 확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맥루한의 글이 늘 그렇듯 은유와 역설로 가득 차 있어 읽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테트래드의 사유방식을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말하고자 한 바에 접근해가는 지적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원제 The Global Village(1988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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