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유대인의 역사’…유대인 합리성이 株式 낳았다

  • 입력 2005년 5월 20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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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문을 연 ‘홀로코스트역사박물관’ 개관행사에서 세계 40여 개국 지도자들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독일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문을 연 ‘홀로코스트역사박물관’ 개관행사에서 세계 40여 개국 지도자들이 조의를 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유대인의 역사/폴 존슨 지음·김한성 옮김/전 3권·각 권 1만5000∼1만8000원·살림

“유대인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곧 세계의 역사를 쓰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저자 폴 존슨 씨는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 4000여 년을 존속해 온 이 특수한 민족의 역사를 정리한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유대인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로 이어지는 종교사를 쓰는 것이다. 스피노자,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이 이룩한 지성사를 쓰는 것이고 하이네, 말러, 쇤베르크, 샤갈, 카프카와 같은 천재들의 예술사를 다루는 것이다. 또한 로트실트 가문처럼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둔 상업인의 역사인 동시에 로자 룩셈부르크와 트로츠키처럼 그 자본주의를 전복하려 했던 혁명가의 역사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로마제국에 의해 침탈당해 전체 역사의 4분의 3의 기간을 유랑민족으로 살면서 세계사의 주역이 됐던 유대인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1권 ‘성경 속의 유대인들’에서는 먼저 그들의 놀라운 기억력과 형이상학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유대인의 지독한 기억력을 입증하는 책이다. 노아의 홍수는 기원전 29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실제의 대홍수였음이 입증됐다. 유대인의 선조인 아브라함도 기원전 19∼20세기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이동한 서부 셈족으로, 용병 또는 행상으로 떠돌던 집단을 칭하는 ‘하비루’ 일파의 지도자로 추정된다. 하비루는 훗날 유대인의 별칭인 히브리(Hebrew)가 됐고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성경 속 아브라함의 말은 유대인의 출신과 운명을 동시에 함축한다.

이렇게 태어난 유대민족은 인류 최초로 유일하고 전능한 신에 대한 신앙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환점, 아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신을 인격화하고 절대화하는 유일신 신앙은 미지의 존재를 합리화하는 능력을 키워주었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 정의, 사랑과 같은 윤리의식의 원천이 됐기 때문이다.

2권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는 로마제국에 의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아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기간 유대인의 번영의 비결이 바로 그 유일신 신앙을 벼려낸 합리주의에 있음을 보여 준다.

유대인 공동체는 학자인 랍비들이 통치하는 ‘교권통치(Cathedocracy)’를 통해 학문과 지식을 중시하는 전통을 간직했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처럼 지성의 거인을 배출한 것도 신념을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유대전통을 학문 각 분야에 적용시킨 결과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합리성의 전통은 또한 불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낳았다. 언제 추방당하거나 재산을 몰수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유가증권, 무기명채권의 발명을 낳았고, 중세 상인조합인 길드에서 배제되자 상품의 전시와 광고를 고안해 고객을 사로잡았다.

가장 효율적인 생산현장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도록 주식시장을 발명한 것도 유대인들이었다.

3권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의 비합리성을 고발하며 20세기의 가장 비극적 사건을 딛고 ‘약속의 땅’을 되찾은 유대인의 저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선 ‘예루살렘’의 영광을 지켜냈지만 자신들의 땅에 정착했을 때는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를 자초했음을 그들의 역사가 증언한다. 이 책의 아쉬움은 바로 그런 비판의식의 부족이다. 원제 A History of the Jews(1998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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