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떠나지만 회사를 살려주세요"

  • 입력 2005년 5월 20일 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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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컴퓨터 이홍순회장. 자료사진 동아일보 화상DB
삼보컴퓨터 이홍순회장. 자료사진 동아일보 화상DB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저는 떠납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직원들은 새로운 각오로 힘을 합쳐 회사를 꼭 살려 주십시오.”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보컴퓨터 이홍순(46) 회장이 지난 18일 자신의 심경을 밝힌 ‘눈물의 편지’를 전 직원에게 보냈다. 이 편지를 읽은 직원들이 흘린 눈물로 회사는 한동안 '울음바다'가 됐다.

이 회장은 ‘임직원 여러분께 보내는 글’이라는 이 편지에서 “2000년 이후 계속된 적자 누적과 대만 및 중국의 저가공세,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날로 악화돼 회사를 믿고 따라 준 임직원 여러분들의 기대에 벗어난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직원을 떠나 보내는 인력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을 실시했으나 결국 자금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득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면서 “이는 회사를 정리하는 절차가 아니라 각종 부실을 털어내고 회생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회사의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추가 인력구조조정설, 부도설 등 갖가지 소문이 만연해 있으나 회사는 소생할 수 있다”면서 “주변의 그릇된 소문과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은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진다면 최대주주로서 저는 모든 권리가 소멸되지만, 회사는 살아날 것”이라며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법정관리로 과다한 부채의 질곡에서 벗어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희망을 제시한 뒤 “25년간 여러분이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인 삼보컴퓨터가 대한민국 경제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흔들림 없는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회장의 편지에 회사는 한 동안 울음바다가 될 정도로 침통해했으나, 직원들 스스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대리점 사장들이 비용을 갹출해 광고를 게재하는 등 재기를 위해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PC업계 2위인 삼보컴퓨터는 벤처의 신화였다.

1980년 7월 서울 청계천의 한 사무실에서 카이스트 출신의 이용태 명예회장 등 7명이 자본금 1000만원으로 공동창업한 이후 승승장구하며 국내 컴퓨터 시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90년대말부터 불어닥친 세계 IT산업의 침체, PC산업 발전 둔화 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삼보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1812억원,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162억원에 불과했다. 이익률 0.7%로 1000원어치 팔아 7원 남긴 셈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상태에서 무리한 해외시장 개척과 물량공세를 벌인 탓이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다음은 이홍순 회장의 편지 전문.

친애하는 삼보컴퓨터 임직원 여러분.

최근 회사를 둘러 싼 내·외부 환경이 어렵고 힘든 상황임을 직원 여러분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난해 영업손실을 비롯하여 2000년 이후 계속된 적자 누적으로 회사는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며, 이는 대만 및 중국업체의 저가공세에 따른 ODM사업의 수익성 악화 및 영업손실 누적, 그리고 이에 따른 사업규모와 여신 축소 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국내 PC경기 마저 저성장을 기록하는 등 내·외적인 상황들로 인해 수익성은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회사를 믿고 따라 준 임직원 여러분들의 기대에 벗어난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사업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진행된 조직개편과 이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이러한 난국을 탈피하고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불가피한 결정이었으며, 이로 인해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노력하고 힘든 시기를 같이 보냈던 일부 직원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력조정 및 자산 매각 등 일련의 사업 구조 조정을 단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고정비 지출 및 금융비용 부담과 함께 해외 매출 부진 등으로 인한 자금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득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회사를 정리하는 절차가 아니라 각종 부실을 털어내고 회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판단되어진 결과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현재 회사 내에는 인력조정의 여파와 회사의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갖가지 소문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추가 인력 조정설은 물론, 부도설 등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이야기들로 인해 다같이 노력해야 할 시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아 경영진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 법정관리 신청입니다.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면 과다한 부채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몸이 가벼워지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최대주주로서 저는 모든 권리가 소멸되지만, 회사 자체는 소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회사를 다시 살리는 것은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삼보컴퓨터의 주인입니다.

25년간 여러분이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인 삼보컴퓨터가 대한민국 경제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여러분 모두의 흔들림 없는 지원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삼보가 더 잘되기를 바라며 회사를 떠났던 선후배 여러분들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말 한 방향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그릇된 소문과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당부 드립니다.

올해는 삼보컴퓨터가 창립 25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 동안 회사의 성장과 아픔을 같이 했던 선배와 동료에게 부끄럽지 않은 회사로 다시 재건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현재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4반세기 긴 세월 우리회사를 아끼고 사랑하여 주셨던 고객과 주주를 위해 새로운 각오로 힘을 합하여, 치열한 생존경쟁과 위기를 극복한 초일류 Global Brand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5월 18일

이홍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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