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PC산업]가격 파괴 전쟁…원가 절감만이 살길

  • 입력 2005년 5월 20일 05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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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PC) 산업의 잔치는 이미 끝났다. 중국이 PC 시장에 들어온 이상 가격경쟁으로 승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현주컴퓨터에 이어 삼보컴퓨터까지 무너지면서 한국의 PC 산업이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본보 19일자 B1면 참조

삼보컴퓨터의 몰락은 무모한 외형경쟁과 문어발식 사업 확장, 해외수출의 급격한 감소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계 PC 산업 자체가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국내 중견 PC 업체가 가격경쟁으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틈새시장을 노리거나 획기적인 비용절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기술 발전이 한계에 왔다

삼성경제연구소 임태윤(林泰潤) 연구원은 “1980년대 PC 산업이 기술 혁신을 주도했으나 이제는 기술 발전이 한계점에 왔다”고 말했다. 획기적인 기술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비싼값을 받는 시기가 끝났다는 것.

현재 PC의 혁신은 PC 제조사가 아니라 부품업체에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중앙연산처리장치(CPU)를 만드는 인텔,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 운영체제(OS)를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돈을 벌지만 부품을 조립하는 PC 제조사는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다.

올해 PC 산업의 원조 격인 IBM이 중국 레노버에 PC사업 부문을 매각한 것은 PC 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가격이라는 점을 인정한 일대 사건이다.

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 역시 컴팩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시도했으나 수익성은 더 나빠져 결국 물러났다.

○ 한국, 가격경쟁력에서 밀린다

삼보컴퓨터가 무너진 직접적인 이유는 HP와의 납품 거래가 중단됐기 때문. 삼보는 부품을 사서 PC를 조립해 HP에 납품하면 HP가 상표를 붙여 파는 제조사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영업을 해 왔다.

ODM 방식은 매출 외형을 늘리고 현금 흐름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익률이 낮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삼보컴퓨터도 작년에 2조1812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234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HP는 삼보컴퓨터 전체 매출액의 약 60%를 차지했는데 이것이 사라지면서 삼보는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구조조정을 통해 현금을 조달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무릎을 꿇고 말았다. HP는 납품업체를 삼보에서 대만 업체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ODM 방식의 납품은 제조원가를 낮추는 것이 핵심인데 삼보는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고 있는 대만 업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앞으로 중국 레노버가 IBM PC사업 부문 인수 후 기술력을 보강하고 제조원가를 대폭 낮춘다면 세계 PC 시장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 중견 PC업체가 설 땅은 없는가

PC 산업은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과거의 ‘화려한 잔치’는 끝난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조사업체인 IDC에 따르면 세계 PC 시장 성장률은 2004년 15%에서 2005년 9.7%로 떨어져 이후 계속 한자리에 그칠 전망이다. 수요가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는 이야기다.

국내 PC업체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풍부한 자금력과 유통망,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그나마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중견업체는 설 땅이 별로 없다는 의견이 많다.

LG경제연구원 나준호(羅俊晧) 연구원은 “국내 중견 PC업체들은 대기업과 초저가 제조업체의 중간에 끼여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내수시장은 너무 작아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중국과 경쟁할 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변해야만 산다

PC업체의 경쟁력은 기술력에서 가격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제조원가를 줄이기 위해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2003년부터 비용 절감에 나서 데스크톱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국내 중소업체에 생산을 맡겼다. 노트북 컴퓨터 생산 공장은 올해 3월 중국 이전을 마무리해 국내 생산라인을 모두 없앴다.

LG전자는 아직 국내 생산을 고수하고 있지만 데스크톱 판매 비중을 줄이고 대신 수익성이 높은 노트북 컴퓨터 판매에 주력해 2002년 20%였던 노트북 컴퓨터 비중이 2004년 40%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가격파괴 현상이 데스크톱에 이어 노트북 컴퓨터로 확산되면서 PC업체들의 수익성은 더 떨어지고 있다. 미국 델이 200만 원이 넘던 노트북 컴퓨터를 99만 원에 내놓으며 가격 파괴에 앞장선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아직 살아 있는 중견업체들도 생산과 유통, 연구개발(R&D) 등 모든 분야에서 원가를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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