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北核위기 돌파구는]<끝>제네바합의 갈루치에 듣는다

  • 입력 2005년 5월 19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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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 대사로서 이른바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를 만들어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제네바 합의의 틀이 무너진 상황인 2005년 5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2차 위기를 그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7일 워싱턴 시내 조지타운에 있는 대학원장 집무실에서 갈루치 원장을 만났다.

―1차 북핵 협상의 주역으로서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살려낼 방법을 찾는다면….

“회담이라고는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진지한 협상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6자의 틀을 유지하면서라도 양자회담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타결을 보겠다’는 협상의 본질보다는 양자회담은 절대 않겠다는 식으로 형식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 정부의 태도는 어떻게 보나.

“노무현 대통령은 워싱턴과는 독립적인 별개의 북한 핵 해법을 갖고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정책은 ‘북한은 한국에 위협이 아니며, 오히려 워싱턴이 위협적’이라는 여론의 산물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은 매우 중요하며 한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

―북한의 진짜 의도가 핵보유국의 지위 확보라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맨주먹만 남는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를 이중 포석으로 읽고 싶다. 미국의 정권교체 시도를 막아내고, 몸값을 높임으로써 미국과 제대로 된 관계개선을 해보려는 것 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맨주먹만 남게 되는데 협상이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얘기가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협상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회담의 앞날을 단정할 수 있나.”

―당신이 주도한 제네바 합의는 북한 정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는 제네바 합의가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성공시켜 핵문제를 10년간 잠재웠다. 그게 뭐가 잘못인가. 이번(2차 북핵 위기)에도 10년을 얻을 수 있다면 협상을 받아들이겠다. 물론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이번 협상에서는 더 투명하고, 엄격한 검증방식을 이끌어내야 한다. 영원히 유효한 협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1994년처럼) 협상을 도출해 내는 것이 (이번처럼) 협상을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클린턴 정부가 북한에 바깥세상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교훈을 줬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제네바 합의가 너무 기계적(mechanistic)이었다는 점은 맞다. 또 미 의회의 정치적 지원도 별로 없었다. 제네바 합의 1개월 뒤인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북-미 간 정치적 관계강화라는 합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점이 있다. 한국의 김영삼 정부도 합의결과를 그다지 지지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핵실험으로 북한이 얻는 이득이 엄청날 것이라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효력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 핵 프로그램의 규모와 성격을 정확히 아는 한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이 북한에 1센트라도 더 줄 이유가 없다.”

―만약 2차 협상대표를 다시 맡는다면….

“해볼 만할(doable) 것 같다. 지금은 11년 전보다 북한을 더 잘 이해하고, 한미일 3국 간 공조도 잘 이뤄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도움을 주는 협상이라면 실수이고 나쁜 행동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협상타결은 어렵다. 협상대상이 존중할 만 하냐는 문제보다 협상의 결과가 북-미 간에 상호 존중할 만한 것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로버트 갈루치는…▼

△미국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졸업, 브랜다이스대 정치학 박사

△유엔 특별사찰단 차장으로 이라크 사찰(1991년)

△미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차관보(1992년)

△북-미 제네바 협상 대표(1994년)

△미사일·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특사(1998년)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2001년∼)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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