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업그레이드 요원한 남북대화

  • 입력 2005년 5월 19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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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12일 정부는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북한에 제의했다. 이것이 남북대화의 출발점이 됐다. 그 후 35년간 남북은 도합 460회에 달하는 공개 회담 및 접촉을 가졌다. 통상적인 국가간 관계라면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경지에 이를 만한 기록이다.

그런데 이번에 열린 남북 차관급회담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북한은 비료 지원에, 남한은 장관급회담에만 매달린, 그야말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의 회담이었다. ‘받는’ 북한은 뻣뻣하고 ‘주는’ 남한은 설설 기는 모습도 여전했다. 당면한 최대 과제인 북한의 6자회담 참가 문제는 차라리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러고서야 남북대화가 업그레이드되겠는가. 만나면 뜬구름 잡는 식의 선문답이나 주고받고, 본론에 들어가면 양쪽 주장이 평행선을 긋는 협상 구도를 깨지 못하고는 진정한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말할 수 없다. 또 말로는 동족을 강조하면서 안건 하나로 밤샘 줄다리기를 밥 먹듯이 하면 국제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부 내의 이른바 남북대화 전문가 집단부터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남북대화가 통상적인 국제협상과는 다르다는 특수성을 강조하곤 한다. 북한은 적이자 동족이며, 따라서 일반 국가간 협상과는 달라야 한다는 논리다.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특수성’을 얘기할수록 북한의 떼쓰는 버릇만 더 고약해졌다.

도와 줄 건 도와 주되 북한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를 확실하게 요구해야 한다. 핵 문제 외에도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개선 조치나 고령의 이산가족 상호 방문과 서신 교환 등 제안할 것은 많다. 정부가 이런 자세를 견지해야 북한 주민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고, 대북 지원에 대한 남한 사회의 ‘퍼 주기’ 논란도 줄일 수 있다.

앞으로 핵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북한 길들이기’는 필수적이다. 북한이 즐겨 쓰는 벼랑 끝 협상 전략은 효력을 다했음이 최근 미국의 반응으로 분명해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폐연료봉을 인출해도 미국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한마디로 북한과의 협상에서 ‘더는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젠 북한이 서구식 협상술을 배워야 할 차례다.

대북 지원에 조건을 달면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을 거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대화가 단절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금치산자’인 북한이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건 북한에도 ‘몸에 좋은 약’이지 않은가. 북한체제가 갑자기 쓰러질 경우 남한이 떠맡아야 할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약’을 장기 복용시켜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동북아 시대의 동반자’로 이끌겠다고 다짐해 왔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더 늦기 전에 북한을 다루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단기간의 대화 단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북한을 통해 정권 차원의 이득을 취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북한에 매달리기만 하고, 북한의 길들이기에 익숙해진 자세는 효과가 없음을 알기에는 지난 1년간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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