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가 도둑 맞는다]<上>가짜에 밀려난 진짜

  • 입력 2005년 5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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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젓이 내놓고 파는 짝퉁 한류홍콩의 ‘남대문 시장’인 카우룽 몽콕 지역에 최근 ‘짝퉁 한류’가 넘쳐나고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쇼핑단지인 사이노플라자 내 상점에 불법 복제한 한국 TV드라마 DVD 등이 버젓이 전시돼 있다. 홍콩=이수형
버젓이 내놓고 파는 짝퉁 한류
홍콩의 ‘남대문 시장’인 카우룽 몽콕 지역에 최근 ‘짝퉁 한류’가 넘쳐나고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쇼핑단지인 사이노플라자 내 상점에 불법 복제한 한국 TV드라마 DVD 등이 버젓이 전시돼 있다. 홍콩=이수형
지난달 22일 홍콩 카우룽 만의 홍콩세관 조사국장실.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의 비디오테이프·DVD가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모두 불법 복제한 가짜였다.

이 제품들은 최근 홍콩세관 단속반이 시장에서 일본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불법 복제품을 단속하다 곁가지로 수거해 온 것이다.

단속반원들은 “한국 물건은 단속 안 한다”고 했다. 해봤자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불법 복제품 제조 판매상들을 단속해서 고발하고 재판에 넘기려면 판권 소유자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협조는커녕 판권 소유자가 누군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디스카운트’ 되는 한류=KOTRA는 3월 동남아 현지 조사를 한 뒤 ‘한류국가의 한국 문화상품 지적재산권 피해 현황 및 대응 방안’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KOTRA는 “한국 문화상품에 대한 저작권 침해가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완구용 팽이 ‘탑 블레이드’는 중국 업체가 만든 불법 복제품이 더 많이 팔리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짝퉁 한류’의 범람은 한류 가치의 훼손으로 나타난다.

이미 중국 동남아 등 해외시장에서는 ‘한류 디스카운트(저평가)’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부 국내 TV 드라마의 DVD 및 비디오 판권 가격은 작년 가을보다 무려 40%나 떨어졌다.

KBS 글로벌전략팀 해외수출 담당 김신일 PD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上海) 소재 배급사와 국내 인기 드라마에 대한 TV 방영권을 포함해 DVD와 비디오 판권 계약을 동시에 벌이고 있었는데 불법 복제품이 나돌면서 DVD와 비디오의 판권 계약은 협상 도중 무산됐다”고 말했다.

홍콩 제1의 민영방송으로 ‘대장금’을 방영했던 TVB의 리카이청 편성부장은 “한류 불법 복제품은 우리에게도 골칫거리”라며 “대장금 등의 반응이 좋아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계속 수입 방영하려 하지만 한국 정부나 업계가 불법 복제품 단속을 소홀히 하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범람하는 불법 복제품이 미국 일본 등 과거 문화선진국의 사례에서처럼 우리에게 유리한 면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 사람들이 우리 문화상품에 익숙해지도록 방치해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마크스먼 컨설턴트의 조지프 상 대표는 “불법 복제품 방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품질관리가 안 되는 것”이라며 “가짜 한류는 한류 자체를 죽이는(Killing Korean Wave)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KOTRA도 “한류 불법 복제를 방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문화상품의 고부가가치 산업 성장 가능성, 생산과 고용 유발효과 등 경제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경계해야 할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팔짱 낀 정부=업계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인력과 비용 문제로 단속을 해도 일회성에 그칠 뿐이라는 설명이다. 소송에 따른 이미지 훼손도 부담스럽다.

한국 정부는 피해실태 파악조차 안 했다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실태조사를 하고 저작권정보센터를 만드는 법안을 발의해 한류국가의 저작권 정보를 연구하고 업계의 상담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저작권 보호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저작권은 사법(私法)인 만큼 기본적으로 저작권자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불만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작권 침해에 대해 개별 기업이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며 “미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파급효과를 면밀히 따져 보복관세 등 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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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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