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지호]3不정책 폐지 빠를수록 좋다

  • 입력 2005년 5월 1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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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고3 수험생으로서 고난도 미적분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본고사 폐지와 과외 금지라는 긴급 뉴스가 들려 왔다. 혼란스러웠다. 입시를 코앞에 두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날 저녁 몇몇 친구들과 의기투합했다. 애꿎은 소주를 연방 축내면서 시국토론을 계속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자들이 ‘정통성 콤플렉스’ 해소와 민심 수습을 위해 ‘군바리다운’ 조치를 감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권이 네 번 바뀌었건만 본고사는 부활되지 못했다. 한데 과외는 그때보다 몇 곱절 극성이다. 어려운 본고사가 폐지되면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줄 것이라는 정책 당국의 예상은 깨끗이 빗나갔다. 예비고사가 학력고사로, 또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지만 사교육 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내신 비중을 높인다 하니 이번에는 내신용 과외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처럼 사교육 축소와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한 모든 시도는 예외 없이 실패했다. 그 결과는 부에 기초한 ‘좋은 교육’의 대물림 현상이다. 그래도 우리 때는 논 팔고 소 팔아 명문대에 진학하는 시골 학생들이 꽤 있었다. 다소 미흡했지만 교육은 계층 이동의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계층 고착화의 통로가 돼 버렸다.

▼교육열 인위적으로 못막아▼

이 같은 총체적 정책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세계화 정보화 흐름에 적응치 못한 당국의 구태의연한 발상과 정책 때문이다. 전두환의 본고사 폐지는 박정희의 고교평준화의 후속조치에 해당된다. 이 두 정책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의 공장 굴뚝 산업에 필요한 평균적 인재 양산에는 효험이 있었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정보화 지식기반 산업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 양성에는 완전 ‘헛방’이다. 다양한 교육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 시기에 ‘표준형 공교육’을 해결책으로 내놓으니 학원사업은 번창해 가고 ‘기러기’는 늘어만 간다.

이제 자유주의 교육혁신은 더 미룰 수 없는 지상명령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와 부존자원의 빈곤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비상한 교육열을 바탕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를 이뤄 낸 나라다. 이처럼 교육으로 흥한 나라를 교육으로 망조 들게 해서야 되겠는가.

20세기 산업화의 유물인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불허)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평준화를 폐지하고 대학입시를 자율화하여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교육생산자인 학교에 학생 선발권을 돌려줘야 한다. 교원평가제를 전면 도입하여 공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과감한 교육개방 역시 절실하다. 그래야 ‘기러기’를 없애고 조기 유학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 더불어 교육자치(自治)를 전면 허용하고 일반자치행정과 통합해 유권자들이 교육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유주의 교육혁신 시급▼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사회의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반(反)민중적 정책이란 반발이 제기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곳은 3불정책과 같은 쓸데없는 간섭이 아니라 바로 이 대목이다. 통일시대 창조에 역행하는 수도 분할에 쓸 45조 원을 장래성 있는 중산층과 서민 자녀들에게 투자하라. 45조 원은 100만 명의 청년을 2년간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돈이다.

올드 라이트와 올드 레프트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정부의 간섭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박정희의 고교평준화와 전두환의 본고사 폐지를 그 무슨 금지옥엽인 양 붙들고 있는 현 집권 세력은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개발 독재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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