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자칭 불량주부가 말하는 드라마‘불량주부’

  • 입력 2005년 5월 1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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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주부가 된다면?’ 10년 전만 해도 발칙한 상상에 불과했던 이 생각은 2005년, 시청률 25%를 기록한 SBS 월화드라마 ‘불량주부’를 낳았다. 마초적인 남편 구수한(손창민)이 주부가 되어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는 모습, 칼 같은 성격의 아내 최미나(신애라)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 등은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경쾌한 도전이기도 했다. 17일 종영한 이 드라마를 그동안 실제 주부 노릇을 하고 있는 남편들과 남편 대신 돈벌이를 맡은 아내는 어떻게 봤을까? SBS ‘불량주부’ 수기 공모에 글을 올렸던 세 사람이 만나 난상토론을 벌였다.》

○ 구수한의 집… 불량주부는 결국 둘 다

▽강승원=때로 TV를 꺼버리거나 다른 데로 채널을 돌리고 싶을 만큼 주인공 구수한(손창민)을 보면 ‘외모만 다르지 속마음은 완전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딸 송이가 아팠을 때 구수한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장면은 저도 세 살 된 아들이 아팠을 때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 공감했죠. 그런데 문득 ‘불량주부’는 과연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저는 구수한은 주부 일이 서투른 점에서, 최미나(신애라)는 직장에만 관심 있고 집안일은 팽개치는 모습에서 둘 다 ‘불량주부’라고 생각합니다.

▽권재교=최미나가 좀 더 불량하지 않나요? 그나마 구수한은 살림 좀 잘해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최미나는 젊은 티만 내는 것 같아요. 나 같은 40대 직장 여성이 봤을 때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당당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웃음)

▽김기홍=권투선수 출신인 구수한이 어쩜 그렇게 아줌마가 됐을까 의문이 들어요. 저도 집에서 살림을 하지만 구수한처럼 동네 아줌마들하고 찜질방을 다닐 정도는 아니었어요.

▽강=그건 그래요. 제 경우 저희 집 바로 옆에 장모님이 살고 계세요. 사위가 살림한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대낮에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어요.

▽권=하하. 저희 남편은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당당한가 봐요. 설거지, 빨래하다가도 앞치마 두른 채 친구도 만나고 그랬습니다. 가끔 제가 ‘간 큰 남자’라고 놀릴 정도니까요.

▽김=결국 구수한이 곱창집을 차리는 것으로 드라마 결론이 났죠. 저는 구수한의 처지가 너무 부럽더라고요. 처가 근처에 살고 부인 직장도 괜찮고 심지어 본인 명의로 집도 있고….

○ 최미나의 직장… 노력해서 성공?

▽권=최미나는 입사할 때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 면접을 봤는데 저는 그 부분이 좀 씁쓸하더군요. 제가 결혼한 아줌마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기혼 여성들도 분명 당당하게 일할 권리가 있는데 굳이 결혼 여부를 따진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강=최미나는 기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도 회사 실장의 사랑을 독차지했죠. 그래서 일부 시청자들은 최미나의 성공에 대해 ‘실장의 개입’설을 제기합니다.

▽김=그래도 최미나는 스스로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을 엄청 구박하는 것이죠. 제 경우도 가끔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있으면서 하루 종일 뭐 했어”라고 단순하게 한마디 던지는 것도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가 있었어요.

▽권=오히려 전 집에서 살림하는 남편이 가끔 야속할 때가 있어요. 직장 생활 하다 보면 회식이나 다른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남편은 100% 흔쾌히 승낙을 한답니다. “아줌마들이 놀아봤자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하는 건지 가끔 내가 너무 매력이 없나 서운해요.

▽김=개인적으로는 드라마 ‘불량주부’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시청자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도 자신들의 삶과 다르기 때문이죠. 저희 같은 주부 남편들에게는 이 드라마가 곧 현실인데 그것을 희화화시킨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강=궁극적으로는 실직 가장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지 않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기홍

31·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결혼 5년차. 2002년 말 4년 넘게 일하던 IT 회사가 폐업. 2003년 1월부터 2년 5개월째 집에서 가사 돌봄.

권재교

43·여·경기 부천시 고강동

결혼 19년 차. 2003년부터 학교 급식사로 직장일 시작. 건축업에 종사했던 남편은 현재 집에서 주부 역할.

강승원

35·서울 중랑구 신내동

결혼 4년차. 지난해 7년 째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아내 대신 6개월간 ‘주부(主夫)’ 역할. 최근 통신회사에 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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