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화이트 칼라]<下>외국의 경우와 대책

  • 입력 2005년 5월 1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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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은 일주일에 90시간씩 일하고도 야근수당을 한 푼도 못 받습니다. 회사의 착취를 이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회사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 모두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는 비디오게임 프로그래머의 아내가 올린 글이 화제를 불렀다. 회사가 남편을 혹사시킨다는 호소에 “남편을 가정으로 돌려 달라” “이 회사뿐이 아니다”는 등 다른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댓글이 5000개 이상 달렸다.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 살인적인 노동 강도가 주는 스트레스…. 화이트칼라의 위기의식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지만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시스템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생산직으로 눈 돌린다=직장에서 밀려난 화이트칼라가 눈높이를 낮춰 생산직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 입사한 J(28) 씨. 그는 요즘 자신의 연봉을 생각할 때마다 한숨짓는다.

그는 “얼마 전 생산직으로 입사한 친구의 연봉이 나보다 500만 원이나 많다”며 “근로교대 시간이 잘 지켜지고 잔업을 하면 수당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취업전문업체 ‘스카우트’에 따르면 이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한 생산직 구직자 중 대졸 학력 이상은 2002년 6700여 명에서 지난해 1만5000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는 ‘학력U턴’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미·일의 경우=미국 근로자들이 자신의 피곤함을 기계 용어로 비유해 썼던 ‘breakdown(고장)’ ‘worn out(낡음)’ 등의 단어는 최근 ‘overload(컴퓨터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림)’와 ‘shut down(컴퓨터 종료)’으로 바뀌었다.

화이트칼라가 컴퓨터 앞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모습을 컴퓨터 용어에 빗대 표현한 것.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미국 중산층의 개인파산 증가 원인’ 보고서에서 “미국은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화이트칼라 중산층을 중심으로 개인파산이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1990년대까지 ‘1억 총중류(總中流)’사회라 불릴 정도로 중산층이 두꺼운 일본도 최근 중산층 몰락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빈부 격차가 클수록 수치가 1에 가까워지는 지니 계수가 2002년 0.49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망과 대책=실업, 파산, 과로사 등 추락할 대로 추락하지만 화이트칼라 계층은 미래에도 존속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계층 분화가 급격히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영섭(崔榮燮) 산업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미래에는 직장에 매이지 않은 화이트칼라 프리랜서가 출현할 것”이라며 “이들과 일반 사무직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화이트칼라 몰락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방치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부담이 되므로 자기계발과 창업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왕배(金王培)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무표준화로 사무직이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단순노동으로 변하면서 화이트칼라가 몰락했다”며 “기술의 재숙련 및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중기(盧重琦)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국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화이트칼라의 재취업 지원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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