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 이명희(李明熙) 회장이 17일 발간된 그룹 사보 5월호에 부친인 고 이병철(李秉喆) 삼성 회장을 회고하는 글을 실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해온 이 회장이 비록 사보이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친과의 자잘한 일화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회장은 사보에서 “아버지는 조조처럼 비범한 인물로 시대를 초월한 인물이었다”며 “(일본 전국시대 지도자인)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두 다른 감성과 판단력을 지닌 지도자였으나 아버지는 이들 세 지도자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화려한 넥타이와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는 것을 즐길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여성적인 면도 있었다고 이 회장은 회고했다.
그는 또 “아버지는 지독한 메모광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메모하는 습관을 배우게 됐고 형제들 중 가장 많은 수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부친과 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격도 비교했다.
“아버지는 시간을 잘 지키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이는 분이었고 그런 점에 비하면 이건희 회장은 조금 다른 측면을 지닌 사람이다. 아버지는 부하 직원의 행보만 보고도 현장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예리한 직관력의 소유자였다. 이건희 회장도 아버지의 그런 직관력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 회장은 “현대 경영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적정 나이를 50대로 보고 있지만 아버지는 68세 때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73세 때 64KD램을 개발했다”며 “그런 아버지가 지금같이 모든 것이 인터넷, 휴대전화로 연결되는 세상을 못 보신 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이 회장은 ‘아버지의 강요’로 현모양처의 꿈을 접고 39세 때 신세계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여성도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며 “첫 출근 때 아버지는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 ‘어린이의 말이라도 경청하라’,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길러라’라는 지침을 주셨는데 그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강운 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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