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498년 바스코 다 가마 亞항로 개척

  • 입력 2005년 5월 17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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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먼저 해외로 눈을 돌린 국가였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발견한 바르톨로뮤 디아스, 남미 브라질에 도달한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은 15∼16세기 포르투갈의 대항해(大航海) 시대를 연 주역들이었다.

포르투갈의 최대 관심사는 아시아였다. 디아스와 카브랄 탐험의 원래 목표도 동양으로 가는 항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시아 항로 개척의 꿈은 바스코 다 가마(1469∼1524)가 실현했다. 배 4척을 이끌고 포르투갈을 출발한 그는 아프리카 해안을 둘러가는 항법을 써서 1498년 5월 18일 인도에 도착했다. 이 길은 1869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운하가 개통되기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최단 항로였다.

인도 항로가 열리자 유럽인들은 신천지가 열린 듯 기뻐했다. 이보다 6년 앞서 스페인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보다 훨씬 더 열광적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 당장 유럽에 별다른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인도 항로 개척은 동서 직교역을 가능하게 해 줬다. 당시 유럽에서는 동양 향료, 도자기, 보석에 대한 수요가 넘쳐났지만 1453년 비잔틴제국을 몰락시키며 아시아로 가는 길목을 막아버린 오스만튀르크 때문에 수입이 쉽지 않았다.

동양 물건들이 바닷길을 통해 대량 유입되면서 상품 가격이 떨어졌고 이는 유럽인의 경제생활을 변화시켜 후일 산업혁명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아시아로서는 인도 항로 개척이 ‘고통’의 시작이었다. 동양이 군사적으로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유럽은 총과 칼을 앞세워 아시아 국가들을 잠식했다.

최근 학계에서는 유럽의 해외 개척 이전에 중국 명나라의 정화(鄭和)가 이끄는 대선단이 1400년대 초 인도를 비롯해 세계 주요 지역을 먼저 발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설령 정화 함대가 먼저 신천지를 밟은 게 사실이라 해도 역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유럽처럼 방대한 세계 시장과 원료를 차지하려는 헤게모니적 욕심이 부족했다.

“변방에 불과했던 유럽은 세계경제의 정점에 있던 아시아라는 열차의 3등 칸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미국과 함께 아시아를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사회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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