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플레이볼’…이라크 女소프트볼 탄생 1년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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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타리크! 뛰어. 왼쪽이야!”

17일 오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시내의 한 운동장. 이라크 여성 10여 명이 두 팀으로 나눠 소프트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라크 내 최고의 타자로 인정받는 지크라 자심(20)이 투수가 던진 공을 때려내자 수비수들은 좌익수 지나 타리(19)에게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1년 전 탄생한 이라크 첫 여성 소프트볼 팀 ‘바그다드’의 선수들이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소프트볼은 ‘미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해서 금지됐던 운동. 하지만 이젠 6개 팀이 주말을 이용해 전국을 순회하며 리그전을 치르고 있다.

자심과 그의 동료들은 주말을 빼고 매일 운동장에 모여 과감하게 차도르를 벗어던지고 반팔 차림의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이스마일 칼릴 코치의 지도로 체조와 왕복 달리기로 시작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칼릴 코치는 “헬멧, 방망이, 보호대 등 장비를 구입하지 못해 이웃나라에서 기증받아야 하는 처지이지만 선수들의 열정만은 하늘을 찌른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

뜨거운 햇볕을 피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연습을 해야 하는데 바로 이 시간대에 납치와 테러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 실제 연습 도중 총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소프트볼 팀을 지원하는 전국야구위원회가 선수들을 버스로 집 앞까지 태워주지만 안심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은 여자가 스포츠를 한다는 이유로 욕설과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라크 소프트볼 선수 중 베스트 20명은 미국의 초청을 받아 7월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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