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 얄타협정, 역사상 최대실수” 발언후 논쟁 불붙어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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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러시아 황제의 휴양지인 크림반도 얄타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대원수(앞줄 왼쪽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문제 논의를 겸한 이 회담에서 연합국은 소련의 적극적인 참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유럽을 소련의 패권 아래 두는 것을 인정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45년 2월 러시아 황제의 휴양지인 크림반도 얄타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대원수(앞줄 왼쪽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문제 논의를 겸한 이 회담에서 연합국은 소련의 적극적인 참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유럽을 소련의 패권 아래 두는 것을 인정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45년 2월의 얄타협정은 역사상 최대 잘못 중 하나’라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이데올로기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9일)을 이틀 앞둔 7일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방문해 “강대국들이 세계의 안정을 위한다는 핑계로 수백만 명의 동부, 중부 유럽인들을 또 다른 제국(소련)의 철권통치 아래 가뒀다”며 소련의 동유럽 패권을 인정한 얄타협정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부시 대통령이 얄타협정을 비판한 지 1주일이 넘도록 미국 내 좌·우파가 대통령의 말은 물론이고 얄타협정 자체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6일 전했다.

얄타협정은 승전국인 미국 영국 소련이 2차대전 전후(戰後) 세계 질서의 틀을 만든 협정이지만 보수파들의 눈으로 보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동유럽을 옛 소련에 팔아 치운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당시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동유럽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얄타협정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역사학자인 예일대의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2차대전 직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 텐란트를 나치 독일에 넘긴 뮌헨 협정이나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와 발트해 3국을 나눠 가지기로 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은 뭔가를 일어나게 만들었지만, 얄타협정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얄타협정은 뮌헨 협정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의 잘못된 전철을 밟았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론이다. 또 스탠퍼드대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케네디 교수는 “이런 논란은 매카시즘(1950∼54년에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선풍) 시기에 민주당원들을 때려잡던 몽둥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도 완강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공보실장을 지낸 패트릭 뷰캐넌 씨는 11일 신디케이트 칼럼에서 “부시 대통령은 2차대전의 승자가 스탈린이라는 무시무시한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라며 “루스벨트와 처칠이 함께 서명한 얄타협정은 소름끼치는 ‘거짓’이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앤 애플바움 씨도 “얄타협정과 다른 전시(戰時) 협정들은 소비에트 점령을 단순히 인정한 것을 넘어 새로운 국경과 정치질서를 합법화했다”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이 얄타협정을 비판한 것은 ‘자유의 확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발언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이데올로기 논쟁은 볼셰비키 혁명 직후인 1920년대 리가에 파견돼 “소련과 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리가 학파’와 나치와 맞서기 위해서는 소련과 손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얄타학파’ 간의 해묵은 대결이 재연되는 듯한 느낌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얄타학파’의 손을 들어줬고, ‘소련 봉쇄정책’으로 유명한 조지 케넌 전 소련주재 미국대사는 ‘리가학파’의 지도자였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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