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中 최고 여성작가’ 홍잉 방한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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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중국어로 글을 쓰면서 뭔가 미묘한 감정을 갖게 됐다. 몸이 중국에서 멀어질 수록, 마음은 더욱 그 곳으로 가는 것 같다”는 홍잉씨. 김미옥기자
“런던에서 중국어로 글을 쓰면서 뭔가 미묘한 감정을 갖게 됐다. 몸이 중국에서 멀어질 수록, 마음은 더욱 그 곳으로 가는 것 같다”는 홍잉씨. 김미옥기자
중국 출신의 여성 작가 홍잉(虹影·43) 씨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굶주린 여자’(한길사)와 ‘영국 연인’(〃)을 알리기 위해 방한, 17일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2001년 ‘중국도서상보(商報)’가 정한 최고의 여성 작가에 선정됐으며, 2000년에는 ‘영웅문’의 진용 등과 함께 ‘베이징 만보(晩報)’가 뽑은 ‘중국 최고 인기 작가 10명’에 들었다. 본명은 진(陳)홍잉이지만 책의 저자 표시에는 홍잉이라는 이름만 밝히고 있다.

‘굶주린 여자’는 충칭(重慶)의 빈천한 집안 출신으로 형제자매들로부터도 “생부(生父)가 따로 있다”며 따돌림 당하는 한 소녀가 사랑과 성(性)을 알게 되면서 짙푸른 잡초처럼 자라나는 과정을 다룬 성장소설.

홍잉 씨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오랜 전통을 가진) 중국 작가들은 자전소설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굶주린 여자’는 거의 내 이야기다. 이 소설은 아마 중국에서 빈민가 출신 여자가 쓴 첫 소설일 것이다. 중국에선 주로 지식인들이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20여 개 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에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본 문화대혁명과 1960년대 초의 중국 대기근, 톈안먼 사태 등 중국 현대사의 격동들이 그려진다. 홍잉 씨는 “톈안먼 사태는 내가 처음 소설로 다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세월이 어렵더라도 체제나 시대 탓으로 넘기기보다 자기 손으로 자기 운명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중국 상하이문예출판사가 여러 이유 때문에 원작에서 3만 자나 지운 채 펴내는 바람에 판권을 되찾기 위해 법정 싸움을 벌여야 했지요.”

홍잉 씨는 영국 국적을 갖고 활동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해외파 작가다. 1991년 영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지금은 런던대 동양학 교수인 남편 자오이헝과 함께 런던에 살고 있다.

그는 ‘영국 연인’에 대해 “1년의 반은 런던에, 반은 베이징(北京)에 머물면서 겪은 문화 충돌을 소화해가는 과정을 중간 결산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조카인 영국 시인 줄리언 벨이 청년 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한 중국 여성 작가와 사랑을 나눈 실화를 소재로 했다. ‘베드 신’ 묘사가 진하다.

홍잉 씨는 “공산 정권이 중국 대륙에 들어서기 전인 1930년대의 이야기”라며 “사랑하고, 사랑 받을 사람의 권리에 대해 썼지만 중국에선 ‘중국판 채털레이 부인’처럼 취급받아 지난해 음란죄로 향후 ‘100년간 출판금지 처분’을 받았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중국에서 이 책을 둘러싼 논란은 줄리언 벨의 연인이었다고 짐작할 소지가 있는 중국 여성 작가 링수화(작고)의 딸이 홍잉 씨를 고소하면서 비롯됐다. 현재 이 소설은 네덜란드 영화사인 카산드라의 영국 지사가 영화로 만들고 있다.

홍잉 씨의 작품들은 중국 본토보다는 유럽과 대만에서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중국 작가들은 유럽 문학 작품을 잘 읽지 않는데 나는 그게 도리어 안심이 된다”며 살짝 웃더니 “유럽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중국과 일본 작가의 책들이 쑥쑥 올라가고 있다. 한국 작가의 책들도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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