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의 실패 경제 발목 잡는다

  • 입력 2005년 5월 1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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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인재 육성과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전문가들은 “관치(官治)금융의 실패구조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정부가 은행을 지배하면서 자원을 배분한 관치금융은 경제규모가 작던 시절에는 유효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자 정경유착 등 부작용이 커지다가 결국 외환위기를 불렀다.

교육도 마찬가지.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교육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 지식기반시대에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공적 기능이 필요한 교육 분야에서 시장원리에 충실한 이코노미스트(Economist)들의 의견이 전적으로 맞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민간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주장에는 귀 기울일 대목이 많다.

○ 평준화가 오히려 불평등을 키웠다

전남대 경제학부 김영용(金永龍) 교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형평성을 강조하다 결과적으로는 형평성도 잃고 효율성도 잃었다”고 진단한다.

첫 단추는 ‘평준화’를 통해 형평성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잘못 끼워졌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공교육으로만 입시준비를 하라는 정부의 메시지는 먹혀들지 않았다.

고소득층이 사교육에 집중하자 중산층이 이 대열에 동참하면서 공교육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결국 사교육을 많이 시킬 수 있는 경제력의 차이로 대학 입학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수준으로 한국의 가구를 10개 계층으로 나눌 때 최하층과 최고소득층의 사교육비 지출 차이는 9배나 된다.

이로 인해 고소득 부모→고학력 자녀→고학력 자녀의 고소득이라는 순환을 낳아 교육이 계층이동(Social Mobility)을 막는 구조다. 교육이 ‘부(富)의 대물림 수단’이 된 셈이다.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이영(李永) 교수는 “평준화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잘못된 생각도 정부가 이런 정책을 내놓는 데 일조했다”면서 “교육 형평성은 평준화가 아니라 교육기회 균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국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교육열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생각은 일반인과 다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文亨杓) 재정공공투자관리 연구부장은 “한국의 교육제도는 형평성을 위해 교육열 자체를 떨어뜨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사회 관습이나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관련이 있는 교육열을 정책으로 떨어뜨리기는 어렵다는 것. 반대로 교육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흡수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문 부장의 주장이다.

○ 교육의 질도 떨어져

기업이나 경제연구소들은 한국 교육의 질(質)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경희대 경제통상학부 안재욱(安在旭) 교수는 “지식기반 시대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데 현재의 입시제도는 이런 인재의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고교는 획일화된 인재를 육성하고 대학은 학생선발의 자율권이 제한돼 평균적인 인재만 공급하고 있다는 것.

미국 랜드연구소도 보고서에서 “기존 지식의 흡수만 강조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으로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육까지 모든 교육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보고서는 막대한 사교육비 때문에 교육에 대한 투자는 엄청나게 많지만 수십만 명의 학생을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교육내용도 이런 평가시스템에 맞추다 보니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량생산 위주의 교육은 고급두뇌 부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이창양(李昌洋)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선진국 대학에서 박사논문자격 시험에는 쉽게 통과하지만 박사논문을 쓰는 것은 힘들어 한다”며 “기존 지식을 이해하는 데만 집중된 학습 습관 때문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도출하거나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원천기술의 확보와 혁신이 중요한 지금은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어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을 어려서부터 길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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