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9년 국내 첫 전차운행

  • 입력 2005년 5월 16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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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5월 17일, 서울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9.7km 구간에서 국내 최초로 전차운행이 시작됐다.

전차가 처음 도입된 배경에는 명성황후에 대한 고종의 애틋한 사랑이 배어 있다. 고종은 청량리에 있는 명성황후의 무덤(홍릉)을 자주 찾았다. 그러나 행차로 인한 비용 부담과 번거로움이 뒤따르자 황실은 고민에 빠졌다.

한성전기회사의 실질적 운영자였던 미국인 콜브란이 황실의 고민을 알아챘다. 그는 고종에게 전차의 편리함을 강조하면서 전차 도입을 제안했다. 고종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1898년 10월 공사가 시작됐다.

교통수단이라곤 마차와 인력거가 주종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전차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전기에 의해 차가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일정한 선로를 따라 정해진 구간을 오간다는 점, 남녀노소가 같은 객차 안에 한데 뒤섞여 있어야 한다는 점 등등이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일대 사건이었다. 전차를 도깨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처음엔 정거장도 없었다.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들면 전차가 서곤 했다. 개통 석 달이 지나서야 승차권 제도와 매표소가 생겼다.

불상사도 적지 않았다. 개통 얼마 전 공중에 매달아 놓은 송전선 12m가 절단돼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두 명은 재판도 없이 즉각 참형에 처해졌다.

개통 열흘 째 되던 날, 탑골공원 앞에선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전차에 치여 숨졌다. 분노한 군중은 전차 두 량을 불태웠다. 놀란 일본인 운전사들이 “호신용 권총 착용, 경찰 동승”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한동안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특히 술에 취해 전차 선로를 베고 잠을 자다 화를 당하는 사고가 이어졌다. 1929년 4월 22일엔 진명여고 학생 120명을 태운 전차가 과속으로 달리다 전복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용산 의주로 마포 왕십리 등 서울 도심 곳곳으로 노선이 연장됐고 이 덕분에 전차는 서울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50, 60년대 들어 버스의 편리함이 부각되면서 전차의 위상이 흔들렸다.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는 전차는 버스의 장애물로 변해갔다. 결국 1968년 11월 29일, 종로행 왕십리발 전차를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전차는 사라졌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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