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북스]‘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 입력 2005년 5월 13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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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강만수 지음/596쪽·2만4000원·삼성경제연구소

요즘 회고록은 대체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① 자화자찬 일색 ② 선거를 앞두고 훌륭한 인물로 띄우기 위해 급조 출판 ③ 연설문 또는 언론보도 짜깁기 ④ 대필(代筆) 작가가 대부분을 쓴 것 등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공통점이 없는 회고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좋은 회고록이란 저자의 회한(悔恨)과 반성도 고백함으로써 교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를 지닌 데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비화가 소개되면 더욱 좋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6년간의 각고 끝에 탈고했다는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은 생명력 있는 회고록이 갖추어야 할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책을 집어 들면 먼저 두툼한 볼륨감이 느껴진다. 600쪽 가까운 분량이다. ‘부가가치세에서 IMF까지’란 부제가 붙어 있듯이 저자가 공직생활 28년 동안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영욕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머리말과 프롤로그부터 눈길을 끈다. 경주세무서 총무과장으로 공직을 시작한 20대 젊은이가 느낀 당혹감과 고뇌는 개발 연대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한달 하숙비가 1만8000원인데 사무관 봉급이 2만 원이라니…. 첫 월급날 친구와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는데 봉급을 다 털어넣고도 돈이 모자라 친구가 나머지 술값을 냈단다.

저자는 1970년대에 부가가치세(VAT) 도입의 실무지휘자로 활약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제(稅制)였다.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위해 납세의무자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거기에다 10%의 세금을 물리는 원리다.

1982년 7월 3일, 토요일 아침에 재무부는 ‘7·3조치’라는 금융실명제 실시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곧 증시가 폭락하고 부동산투기 열풍이 불었다. 결국 금융실명제는 연기됐다. 실명(實名)제가 실명(失明)했다는 비아냥거림이 들렸다.

당시 재무부 이재국장이던 저자는 “이재국장 시절에 한 일 가운데 기억하고 싶은 것보다 잊고 싶은 것이 더 많다”고 털어놓았다. 고전의 연속이었단다. 가을 체육대회에서 축구를 우승한 것이 가장 보람되고 기억하고픈 일이라고….

외환위기 당시 재경원 차관으로 있던 저자는 국가부도 직전의 위기를 실감했다. 이를 막으려 발버둥쳤지만 도도한 물결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1998년 3월 9일 저자는 시(詩)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그 ‘유명한’ 고별사를 읽으며 재경부를 떠났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진실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전하기 위한 명상록이 되기를 바라며 썼다”고 밝혔다.

한국경제라는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고승철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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