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

  • 입력 2005년 5월 13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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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교수는 자신이 태어난 1936년에 대해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와 일장기 말소 사건이 벌어진 해이고 안익태가 ‘애국가’를 지은 해, 한강 인도교가 개통되고, 경부선 특급 아카쓰키가 서울∼부산을 6시간 45분에 달린 해”라고 썼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윤식 교수는 자신이 태어난 1936년에 대해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와 일장기 말소 사건이 벌어진 해이고 안익태가 ‘애국가’를 지은 해, 한강 인도교가 개통되고, 경부선 특급 아카쓰키가 서울∼부산을 6시간 45분에 달린 해”라고 썼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김윤식 지음/문학사상·656쪽·2만5000원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문학비평가 김윤식(명지대 석좌교수) 씨가 쓴 자전적인 문학 에세이다. 광복 전후부터 20세기 중후반까지 ‘한국 현대문학사의 조감도’라고 할 만한 책이다.

그는 평생 책을 파고든 자기 삶에 대해 “두더지 같았다”고 낮춰 썼다. 장 폴 사르트르의 비유를 빌려 와 “묘지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모질게도 이렇게 썼다. “서재 속에는 죽은 사람들(작고한 필자들의 정신)이 있다. 남은 것은 납골당의 항아리 같이 판자(서가) 위에 늘어놓은 조그마한 관(棺·책) 뿐이다.” 평생 책을 읽고, 써온 김 교수가 스스로를 ‘묘지기’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문학비평가로서 마흔이 넘으면 조로(早老)하는 현실에서 그는 이미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5월 이후에는 이 책을 포함해 평론집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 역’(솔) 등 4권을 새로 보탰다.

이 책의 부제이자, 그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하는 말이 있다. 헝가리의 문학사가(史家)인 죄르지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 첫 줄이다.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을 창공의 별이 지도 몫을 하는(가리켜주는) 시대는 복 되도다.”

그가 별이 떠 있는 밤길을 거쳐 닿고자 했던 곳은 ‘문학 속에 담긴 인류 정신의 원형’이었던 것 같다. 거기 가는 길로서 거쳤던 많은 한국 문학의 이야기가 이 책에 나온다.

유신시절부터 몇 가지 고초를 겪어 가며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작가들을 파고들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썼다. “(그 연구가 내게 생기기 쉬운) 관념과 현실, 회색과 녹색을 잇는 일종의 통로였다. 내겐 일종의 앙가주망이었던 셈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흥미로운 진단을 했다. 사르트르가 ‘지식인의 참여’를 강조한 것도 사실은 어릴 적 생긴 ‘질병’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사르트르는 그 질병에 대해 자서전 ‘말’에서 이렇게 썼다. “할아버지 서재 속의 원숭이가 진짜고 룩셈부르크 동물원 속의 원숭이가 가짜로 보였다”고. 책에 너무 빠졌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가 가장 열기에 싸여 회상하는 시절은 1960년대 아직 황량하던 서울대 공대 캠퍼스 옆의 교양과정부 교수로 밤을 새우던 때인 것 같다. “소설가 최인훈과 시인 고은이 찾아오면 캐비닛 속에 든 소주를 꺼내 마시고, 학교 바깥 자장면 집에서 불문학과의 김현(작고)과 배갈을 마시며 이제하의 ‘유자약전’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절”이다.

김 교수는 현업에서 은퇴한 이로서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후학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 책을 써나갔다. 그는 이 책을 이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리한다. “슬퍼하지 말지어다. 우리는 자주 낙심하였으나 그래도 우리의 길을 걸었으니까. 그 결과물이 비록 몇 알의 붉은 열매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 열매는 캄캄한 뇌우 속에서 가까스로 익었으니까. 이것만큼 군의 장래를 보장할 확실한 증거가 다시 있을 것인가.”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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