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임규진]경제정책의 近視와 遠視

  • 입력 2005년 5월 12일 18시 13분


코멘트
몽골인의 시력(視力)은 평균 2.9라고 한다. 2km나 떨어져 있는 양(羊)의 암수를 구별하는 사람도 있다니 놀랍다.

그런데 세계적 무한경쟁 시대엔 먼 거리보다 먼 시간을 내다보는 시력이 더 중요하다. 일찍이 60년 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과 시장경제의 승리를 예견한 하이에크는 그런 점에서 시력이 탁월했다 하겠다.

반대로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이 튼튼하니 걱정 없다”고 했던 정책 책임자들의 시력은 형편없었던 셈이다. 2001년 경기(景氣)를 살린다고 카드 남발과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경제 당국자들의 시력도 더 나을 게 없다.

지난날의 교훈 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멀리 보는 경제’를 강조한다. 대통령은 올해 3월 초 재정경제부의 보고를 받으면서 “6개월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는 경제 정책보다 10년쯤 내다보는 중장기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경제 정책의 장기(長期)주의를 특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이 위원장은 “개혁 과제들은 대체로 장기적 성격의 과제이므로 단기간에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한 성과가 나타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아직 눈에 잘 안 보일 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멀리 내다보는 것이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문제는 오늘의 경제 정책들이 ‘제대로’ 멀리 보고 있느냐는 점이다. 하늘만 쳐다보고 걷다가 발밑의 늪에 빠지면 낭패다.

노 대통령과 이 위원장은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해 부동산 투기만은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재작년부터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 위축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판 뉴딜’이라고 불리는 종합투자계획으로 ‘단기 대응’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일부 지역 아파트 가격이 다시 고개를 쳐들자 이달 4일 단위를 더 높인 ‘집값 잡기 대책’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은 쓰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집값 상승을 주도한 것은 정부가 집중 공격 목표로 삼은 서울의 강남지역이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그런가 하면 ‘더 멀리 내다보는’ 국토균형발전 전략은 전국 곳곳의 땅값 급등을 불렀다. 행정수도,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의 계획이 거품부터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불거지는데 장기적으로 잘될 것이라고 해 봐야 설득력은 별로 없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멀리 내다본다’는 말과는 달리 냉탕, 온탕, 냉탕을 반복하는 양상으로 읽힌다.

올해 들어 정부는 경기가 되살아난다고 희망가를 자주 불렀지만 1분기 성장률은 3%에도 못 미칠 전망이라고 한다. 이런 저성장으로는 장기주의를 아무리 강조해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위원장은 ‘구름 속의 달’이라는 시적인 말로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을 설명한 적이 있다. 구름이 걷히면 휘영청 밝은 달을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난달 해외 순방 중에 “경제는 완전 회복됐다”고 한 것과는 달리 먹구름이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게 지금의 우리 경제다.

경제를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近視)도 문제지만 가까운 것을 잘 못 보는 원시(遠視)도 문제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