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는 안키우고 복지만 ‘선진국형’…재정운용계획 논란

  • 입력 2005년 5월 1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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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국민소득 1만5000달러 수준의 나라에 걸맞지 않은 ‘선진국형’ 예산편성 계획을 세우고 있어 나라 살림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는 대신 성장 동력이 되고 고용파급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이나 과학기술 분야 등의 연구개발(R&D) 예산은 상대적으로 비중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주국방’을 이유로 1980년대 이후 계속 줄었던 국방비마저 2005년부터 큰 폭으로 늘고, 국민 세금부담도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200조 원을 넘어선 국가부채 관리에 ‘빨간불’이 켜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당정은 9∼11일 3차례에 걸쳐 ‘재정운용 계획 협의회’를 열어 2005∼2009년 예산편성방안의 큰 틀에 합의했다. 5년간 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6.6%로 설정했지만 복지예산은 매년 9.3% 이상씩 늘리기로 했다. 국방예산도 주한미군 감축에 대비하고 ‘협력적 자주국방’을 한다는 명분 아래 연간 9∼10%씩 늘리기로 했다.

열린우리당 강봉균(康奉均)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국내 복지지출은 200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복지예산 증액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연구개발비와 사회간접자본 투자, 첨단산업 육성비의 예산 비중은 점차 줄고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OECD 기준’을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건설교통부가 11일 국회에 제출한 ‘SOC 배분방향’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도로 철도 항만 등 ‘SOC 축적량’은 인구 면적 대비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반면 당정은 향후 5년간 SOC 투자비 증가율을 1.6% 수준으로 맞췄다. 1999∼2004년 3.8% 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 분야의 연구개발비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부 등에 따르면 1971∼2002년 연평균 연구개발비 증가율은 28.3%였고 외환위기가 겹친 1998∼2003년에도 14.4%를 보였지만 향후 5개년간 증가율은 고작 8∼9% 선으로 잡혀 있다.

복지와 국방비 증가 또한 세금부담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2004년 19.5%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5년 후인 2009년에는 20.1%로 올린다는 방침이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그보다 1, 2%포인트 더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예산을 투입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게 진정한 ‘복지’”라며 “당정에서 논의되는 예산계획안은 단기적이고 대증적 처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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