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알 카에다 내부불화 심각

  • 입력 2005년 5월 1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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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아랍계와 중앙아시아계 사이의 인종갈등으로 심각한 내부 불화를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알카에다의 내부 균열은 2일 알카에다 3인자로 알려진 아부 파라지 알 리비가 체포되는 간접적 원인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내부 갈등 씨앗은=2001년 말 빈 라덴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알카에다 아랍계 무장조직원 수백 명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다. 9·11테러 이후 미군의 집중적 공세에 쫓겨 도주한 것이다.

이들은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 지역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지역에는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탈출한 중앙아시아계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먼저 와 은신 중이었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무장대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아랍계는 와지리스탄 여러 마을에 자리 잡았다. 이중 샤카이 마을에는 파키스탄의 신규 조직원 양성 훈련시설까지 세웠다.

이는 이 지역을 선점하고 있던 IMU 등 중앙아시아계와 은신처와 무기, 자금 확보 다툼을 빚게 했다.

특히 아랍계의 유입으로 미국의 공격이 집중되고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자 중앙아시아계 조직원들의 불만은 커져 갔다.

▽알카에다 쪼개지나=IMU는 2001년 말 와지리스탄에 대한 미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공동창설자 겸 지도자인 주마 나망가니를 잃었다. 이렇다할 지도자를 찾지 못한 이들은 아랍계 지도자들에게 의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더구나 빈 라덴과 알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중앙아시아계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체포된 리비 역시 2003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에 대한 두 차례 암살 시도와 2004년 파키스탄 총리 암살 기도 때 모두 중앙아시아계를 배제했다.

파키스탄의 한 정보관리는 “중앙아시아계는 알카에다에서 보병 역할만 했으며 진급 기회도 없어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차별은 중앙아시아계가 파키스탄 정부군에 붙잡혔을 때 아랍계에 관한 정보를 주로 털어 놓게 만들었다. 2004년 샤카이 훈련시설에 대한 공격 때 중앙아시아계의 정보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후 알카에다의 아랍계 고위 지도자들이 줄줄이 체포됐다.

샤우카트 술탄 파키스탄 참모총장 대변인은 “파키스탄 내 알카에다는 더 이상 완전한 조직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빈 라덴과 자와히리가 아직 붙잡히지 않았을 뿐 알카에다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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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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