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진규]서울대 ‘본고사式 논술’ 안된다

  • 입력 2005년 5월 11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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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2008학년도 대입 전형안을 둘러싸고 ‘본고사 부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듯하다. 이번 전형안은 내신 위주의 ‘지역 균형 선발’, 학교생활기록부 중심의 ‘특기자 선발’, 논술 위주의 ‘정시 모집’으로 인원을 각각 33% 균등 배분해 선발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준화를 통한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교육 당국의 정책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우수한 자질을 갖춘 학생을 자율적으로 선발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논술 위주의 ‘정시 모집’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내신(40%)과 면접(20%)의 비중은 여전히 높지만 실질적인 당락의 판가름은 논술(40%)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측은 새로운 유형의 논술시험을 치르겠다고 발표했지만 논술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본고사 형태의 시험을 치를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지금도 이름만 논술고사지 속을 들여다보면 본고사 형태로 시험을 치르고 있는 대학이 부지기수다.

서울대도 본고사 형태의 논술시험은 지양한다고 선을 그었다. 구체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서울대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일선 고교나 수험생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문제 유형을 공개해 불안감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단일 문제로 3시간 동안 2500자 내외의 답안을 작성하는 방식은 수년간의 학습 과정을 단 하루에 평가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 서울대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논술시험에 대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논술 문제는 반드시 고교 교육 과정의 범위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학원 수강이나 과외를 하지 않고도 학교 공부에 충실한 학생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을 요하는 문제는 오히려 사교육 창궐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둘째, 문항 수와 답안 작성의 변화가 요구된다. 말하자면 작문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식의 정도와 활용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단일 문항이 아니라 적어도 다섯 개 정도의 문항에 대해 길지 않은 분량(문항당 700자 내외)의 답안 작성을 요구함으로써 수험생들의 지적 수준을 다양한 각도에서 충분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재의 계열 및 학부 단위의 출제뿐 아니라 학과나 전공 단위 출제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기본적인 소양 중심의 평가보다는 전공과 관련한 구체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영문학과는 영어 활용 능력을, 법학과는 법조인으로서의 기본 능력과 자질을, 경영학과는 경제 상식과 경영 마인드를 묻는 문제를 각각 출제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넷째, 폭넓은 독서 능력을 평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독서 능력만큼은 사교육에 의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학원이나 과외에 매달리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이 진학에 훨씬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서울대 논술에서 독서의 중요성이 높아지면 일선 고교의 독서 교육도 활성화될 것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원칙을 통해 서울대는 대학의 학생 선발권과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형안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본고사 부활’이 아니라 ‘논술고사의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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