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윤정]금연도 富를 창출한다

  • 입력 2005년 5월 10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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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쯤 전에 프랑스에서 ‘경기부양과 일자리 확대를 위해 군대를 키우자’는 주장이 나왔다. 논란이 치열해지자 클로드 바스티아라는 경제학자는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이라는 책을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방위를 위해서 군대를 키우자는 주장은 말이 된다. 그러나 ‘경제를 위해서’라는 이유는 엉뚱하다. 만약 군대를 키워 경제가 산다면 모든 장정을 입대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는 집집마다 유리창을 깨뜨리면 유리산업이 번성하고 경기가 회복된다는 말과 같다. 심지어 낮에도 실내에선 커튼으로 햇빛을 가리도록 법으로 강제하면 양초산업이 융성할 수 있다.”

낭비적 자원 배치는 반짝경기를 띄운다. 잠깐 실업문제를 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함으로써 국가경제를 뿌리부터 좀먹는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담배 생산의 저하로 인해 0.3%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최근 한국은행의 추정도 같은 논리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GDP는 한 나라에서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 생산 활동에 참여한 결과 창출된 부가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합계를 말한다. 따라서 GDP 성장률을 계산할 때 담배 생산량뿐 아니라 다른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도 고려해야 한다. 담배 생산량이 줄었다는 것은 국민의 담배 소비량이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담배 소비를 줄인 국민은 담배 대신 뭔가 다른 것을 소비했거나 저축했을 것이다. 만일 국민이 담배 대신 담배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가진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했다면, 그리고 담배를 사는 대신 저축한 돈이 담배보다 큰 부가가치를 가진 재화와 서비스에 투자됐다면 전체 GDP 성장률은 상승할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대체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 가지 재화의 생산량 변동이 GDP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둘째, 담배 소비가 줄면 흡연으로 인한 질병이 줄고 국민 건강이 증진된다. 국민 건강 수준이 향상되면 개개인의 노동 생산성이 증가한다. 흡연으로 인한 질병이 줄면 이에 소요되는 치료비용 역시 절감돼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런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 경제 성장을 논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GDP 성장률 등락보다는 넓은 스케일의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셋째, 담배는 마약이나 도박처럼 바람직한 재화가 아니기에 담배 생산의 감소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도 이제 양적인 국가 경제 성장에만 치우치지 말고 질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할 시점이다. 경제 성장이 부정적인 재화와 서비스 생산으로 인해 이뤄진다면 이는 어느 시점에 가면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국가 경제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 담배와 같은 부정적인 재화의 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는 우리 정부도 성장의 질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이뤄진 담배가격 인상과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에 대한 비준 결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보건 정책은 교육 정책과 마찬가지로 ‘국가백년지대계’다. 정부와 국민은 보다 장기적이고 넓은 시각에서 국가 보건정책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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