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330년 로마 콘스탄티노플 완공

  • 입력 2005년 5월 10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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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30년 5월 11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주재로 제국의 두 번째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완공식이 열렸다. 고대 그리스 도시 비잔티움의 거리를 네 배로 확장해 3년 반의 공사 끝에 제국의 신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역사였다. 도시의 이름은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완공식 이후에도 성벽과 교회와 궁전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콘스탄티누스는 306년 부왕 갈레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뒤 분열된 제국을 서부 주도로 재통일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왜 동방으로의 천도를 단행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313년 그가 기독교를 공인한 데 있었다. 쇠락해 가는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동방에서 친(親)황제 세력을 결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활동과 죽음, 부활의 무대였던 예루살렘과 고대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트로이 등도 한때 새 수도 후보에 올랐으나 황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옛 비잔티움을 최종적으로 낙점했다.

새 수도가 건설된 뒤 제국의 중심은 급속히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395년 제국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두 아들에게 동서 로마 제국으로 분할 상속됐다. 정치 사회적으로 해이해진 서로마 제국은 분열된 지 81년 만에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멸망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유사 이래 유일하게 ‘천년제국’의 대기록을 세울 운명이었다. 정치적으로 로마의 제도를 이어받고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 제국의 역사는 그러나 외환(外患)의 연속이었다.

북쪽으로 스텝 지역의 유목민과 슬라브 세력, 동쪽으로 7세기부터 대두한 이슬람세력의 도전 앞에서 제국의 등불은 여러 차례 빛을 잃을 뻔했다. 심지어 ‘기독교 세계를 구원한다’는 서방의 십자군도 이 풍요한 제국을 강탈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10세기(世紀)가 흘러갈 동안 치명적인 포위공격을 열 차례나 견뎌낸 콘스탄티노플은 고대 로마의 풍요한 문화를 잘 보존했다가 후세에 넘겨주는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했다.

제국의 수도는 1453년 오스만튀르크에 점령되면서 종말을 고했다. 도시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개명됐다. 장려한 ‘하기아 소피아’ 사원도 이슬람 모스크로 역할을 바꾸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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