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銀, 한국의 골드만삭스 꿈꾼다

  • 입력 2005년 5월 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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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관 2층에 있는 ‘M&A실’. 전자개폐 방식인 이곳의 문은 유지창(柳志昌) 산업은행 총재의 사내 신분증으로도 열리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기업의 주인을 바꿀 수 있는 치밀하고 비밀스러운 ‘작전’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의 시설 및 운영자금을 지원하던 데서 벗어나 선진국형 투자은행으로 바뀌고 있는 것.

투자은행은 기업 인수합병(M&A)을 중개하거나 펀드 운용을 통해 지분 투자를 하는 은행으로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등이 대표적이다.

○ 선진국형 투자은행으로

지난달 하이트맥주컨소시엄이 진로를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 증권업계는 산업은행의 역할을 주목했다. 올해 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진로의 매각 작업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요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주로 지분을 갖고 있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매각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분 관계가 없는 회사의 매각 작업에 외국계 증권사인 UBS와 함께 자문역으로 참여해 하이트맥주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게 했다.

또 하이트맥주 측에 인수대금으로 1조 원 규모의 협조융자를 제공하고, 이와 별도로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1000억 원을 출자키로 했다. M&A 중개 수수료와 투자 수익을 동시에 챙기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산업은행은 현재 국내 중형 및 대형 기업에 대한 추가 M&A를 계획하고 있다. 인수 자문에 응하거나 직접 투자를 통해서다.

이를 위해 올해 사모투자펀드 2개를 추가로 조성해 1조 원의 ‘실탄’을 비축할 계획이다.

이 밖에 1조5000억 원 규모의 ‘한국인프라펀드’(가칭)에 4000억 원을 투입해 장기투자에도 나서고 했다. 총 18개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한국인프라펀드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며 산업은행이 운용을 맡는다.

○ 넘어야 할 산도 많다

M&A 시장에서 평가하는 산업은행의 강점은 풍부한 경험과 공신력이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실전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은행 한대우(韓大宇) M&A 실장은 “부실기업의 건전 자산과 부채를 분리해 매각하는 방식은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산업은행이 대우중공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처음 국내에 선보인 기법”이라며 “이런 경험이 M&A 업무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책은행이라는 한계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를 집행하면서 공공성을 우선해야 하며 인력운용에서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

금융계 관계자는 “M&A 업무의 핵심은 우수한 인력”이라며 “외국 대형 투자은행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인재를 유치하는 데 반해 산업은행은 자체 직원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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