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플때 더 아파하는…이것이 가족

  • 입력 2005년 5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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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랑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 더욱 커진다. 23년째 식물인간처럼 지내는 아내를 돌보는 남편, 입양아를 위해 친아들을 서울에 홀로 두고 지방으로 이사 간 부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는 올해 처음 공식 지정된 ‘가정의 날’(5월 15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1회 가족이야기 공모전을 실시, 100여 편의 작품 중 8편을 10일 최종 선정해 책으로 출간키로 했다. 다음은 수상 후보작의 내용.》

▽전신마비 아내 간병=‘전신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23년째 1급 지체장애인의 삶을 살아 가는 A(48) 씨. 그는 결혼한 지 4년째 되던 해 둘째 아이를 낳고는 갑자기 병을 얻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소변을 다른 사람이 받아줘야 하는 신세가 됐다.

걸음마를 갓 뗀 첫째 아이와 갓난아이는 시어머니가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합병증이 생기자 A 씨는 요양소로 들어가야 했다. 보다 못한 친정아버지는 “미련을 버리거라. 산 사람이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안락사를 권했다.

A 씨는 남편에게 수차례에 걸쳐 이혼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은 “부부는 그리 쉽게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면서 전국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치료와 요양을 시켰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다는 욕심만큼 건강 회복과 삶에 욕심을 가지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아이들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기를 3년여. A 씨는 기적처럼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A 씨는 “10년 동안 10여 차례 수술을 받을 때마다 남편이 ‘아내의 생명 위험을 감수한다’는 동의서를 쓰며 마음 아파할 때 가슴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아이들도 “몇 달 만에 한 번씩 집에 들렀다가 요양소로 돌아가는 어머니와 헤어지는 ‘생이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간단한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나아진 그는 집에서 팔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며 그간 못 다한 효도를 하는 중이다.

“이제껏 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갚기에는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는 몸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가족에게 밥을 퍼주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입양아 돌보기=6세짜리 남자아이를 입양한 B(44) 씨 부부는 5년 뒤 서울에서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로 이사를 갔다. 입양한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가정과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

몸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더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고교 3년생인 친아들은 서울에 홀로 두고 갔다. B 씨 부부가 오래전부터 입양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다.

하지만 친아들이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자 B 씨 부부의 부담은 더 커졌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심정. 주위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큰아들 친구 중에는 “동생이 아니라 네가 입양된 것 아니냐”고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B 씨 부부와 큰아들은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묵묵히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째는 자신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큰아들은 보란 듯이 모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으로 커가는 둘째를 보며 가족들이 환한 웃음을 짓자 주위에서도 모두 부러움을 나타낸다.

B 씨는 “우리 사회에 남다르지만 힘들게 시작한 가정이 많다”며 “내부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워할 이들에게 보다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용기를 북돋워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는 수상작을 10일 인터넷 홈페이지(www.hhfc.or.kr)를 통해 발표한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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