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北核위기 돌파구는]한승주 前외무에게 듣는다

  • 입력 2005년 5월 8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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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직을 그만둔 뒤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가진 한승주 전 주미대사. 직접 인터뷰는 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그리고 7일 서면 및 전화로 추가 인터뷰가 이뤄졌다. 김미옥  기자
대사직을 그만둔 뒤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가진 한승주 전 주미대사. 직접 인터뷰는 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그리고 7일 서면 및 전화로 추가 인터뷰가 이뤄졌다. 김미옥 기자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공개되면서 시작된 제2차 북한 핵 위기는 올해 2월 10일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을 거쳐 이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6일 ‘함북 길주에서 핵실험 준비 징후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핵 위협으로 몰아넣고 있는 위기의 수레바퀴를 멈추거나 되돌릴 길은 진정 없는 것일까. 1993∼94년의 제1차 북한 핵 위기 때는 외무장관으로, 2차 위기 때는 주미대사로 현장에서 협상과 회담을 지휘한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에게 긴급 진단을 부탁했다.》

▼높아진 핵실험 가능성

―‘북한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핵실험 준비 징후’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6일자 보도는 신빙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보도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징후가 있다고 해서 북한이 곧 핵실험을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반적으로 우리(한국)는 북한의 핵실험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핵을 보유한 것이고 안 하면 아직도 보유하지 않은 것처럼 안도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핵실험 전인) 지금 상황도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지금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북한은 이제 자신이 핵무기 보유 국가임을 기정사실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에 자신감이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핵실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한으로서는 핵실험을 한 뒤 ‘우리가 핵무기를 가졌다고 이미 선언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2차 위기의 원인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무기화 단계까지 간 것으로 보는가.

“미국은 무기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꽤 가까운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플루토늄보다 찾기는 힘들고 (핵무기로) 대량화하기는 쉬워서 감시하기 어렵다.”

―북한은 1차 위기 때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가.

“1차 때는 핵개발을 하다가 중단했는데 이번에는 내친김에 핵능력을 확보해 놓겠다는 의도가 있다. 그게 다른 점이다.”

―1차 위기 때보다 2차 위기가 더 심각하다고 하는데 한미 양국 정부의 위기의식은 1차 때보다 덜한 것 같다. 성숙해져서 그런가.

“성숙해졌다기보다는 1, 2차 위기를 거치면서 면역력이 생긴 것 같다. 지금 심각하기는 꽤 심각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그 심각성을 축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2월 10일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했을 때 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협상용이다. (핵보유를) 확인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과잉 반응하는 것을 우려했고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 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인정하면 지난 4년간의 대북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中의 對北영향력 한계

―중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있는가. 북핵 문제를 대만 문제에 대한 대미(對美) 지렛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 내에서도 그런 의문이 있다. 그러나 내가 관찰하건대 중국은 북핵 문제를 대만 문제나 미중, 일중 관계 같은 다른 이슈와 연계시키려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북핵 자체가 중국에 위협이 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대외적으로 반출할 수도 있고…. 그러면 일본이나 동북아 다른 나라의 핵무장 핑계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중국이 대북 무역 통로인 단둥 지역만 막으면 북한이 말을 들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은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미국한테만 쓰는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3가지 큰 목표가 있다. 첫째 북한 정권 체제를 존속시키는 것, 둘째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 셋째 한반도에서 전쟁이 안 나게 하는 것이다. 3가지 모두 중국에 이익이 되는데 하나를 너무 추구하다 보면 다른 목표에 지장을 받는다. 그래서 중국으로서는 균형이 필요하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1차 때와 비교하면….

“1994년 북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갔을 때 중국은 ‘북한이 협상에 안 나오면 도와주기 어렵다’고 비공개적으로 얘기했다. 그 직후 북한이 다시 협상테이블로 돌아왔다. 지금은 중국의 역할이 가시화돼 있어서 그때처럼 먹혀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있긴 있는데 대체로 극약이다. 그런 채찍을 중국이 쓰겠느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중국도 그 대가를 꽤 치러야 한다. 중국의 (대북) 채찍은 쓰기 어려운 채찍이다.”

▼6자회담과 해결 시한

―현시점에서 6자회담의 유용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 유용성은 북한이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전제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를 위한) 위험한 고비, 취약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도 실제는 북-미 막후 협상 방식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국은 6자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대북)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이 협상이 아니라 접촉 차원에서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방식을 유용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보유를 선언했다. 앞으로 핵실험까지 한다면 미국은 절대 대북 특사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굽히고 들어가는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안보리 제재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전 단계에서 북한이 압력을 느낄 것이냐는 점이다. 그런 점 때문에 중국과 한국은 공식적, 표면적으로 안보리 회부에 부정적 태도를 취할 것이다. 어쨌든 안보리로 가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커진다. 안보리에서 북한을 도와줄 수도, 안 도와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 설득을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남아 있는 게 있나.

“거의 없다고 본다. 요새는 중국도 (외교적 노력을) 포기한 것 같다. 중국은 지금 고민이 많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소진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

―북한이 전격적으로 6자회담 테이블에 다시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가능성은 있지만 굉장히 희박한 것 같다. 마이너스 요인이 많다. 첫째, 북한은 핵능력에 자신을 갖게 됐다. 둘째, 자기들이 버티면 중국과 한국의 (대북 온건) 태도가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희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 셋째,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안 가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데 있다.”

―미국의 태도도 중요한데….

“미국 중간선거가 내년 11월에 있다. 만약 미국이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추진한다면 내년까지 미루지 않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집권 2기에도 북한이 핵능력을 키워 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1차 위기 때보다 한미 공조가 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미국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부시 행정부 사람만이 아니라, 부시 정책에 비판적인 대북 온건파들도 ‘협상할 때는 압력과 유인책, 채찍과 당근이 다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채찍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한다. 그러면 북한이 협상하려 하겠느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오면 한미 공조가 본격 갈등 국면으로 갈 가능성도 있지 않나.

“한미 양국 정부 간에 양국 정상의 신뢰를 받는 인물끼리 ‘공동 전략(Joint Strategy)’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1차 위기 때는 대북 강경책을 쓰든, 온건책을 쓰든 양국 간에 코드를 맞추고 공동전선을 펴는 게 가능했다. 한미 양국 협의 때 ‘상대를 설득하느냐’ ‘설득 당하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대한 브레인스토밍(난상토론)이 이뤄졌다. 지금은 양국 사이에 그런 토론을 이끌어갈 여건이 안 돼 있는 것 같다.”

―한미일 3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모여 북핵 문제 대처를 위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3국의 내부 주장을 통일시켜 북한에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중국을 통해서나, 아니면 3국 수석대표 중 한 사람이 직접 전달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형식은 미국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그런 과정이 북한의 협상 의지를 시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승주 교수는…▼

△서울 출생, 65세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무장관 (1993년 2월∼1994년 12월)

△유엔 키프로스 특사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의장

△고려대 총장서리

△주미대사 (2003년 4월∼2005년 2월)

인터뷰=김창혁 국제부 차장

정리=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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